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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와붕가 Nov 02. 2023

파업 D-DAY가 다가온다.

파업은 축제라 했다.

지하철은 만날 파업이냐!


이때쯤이면 승객으로부터 항상 들어왔던 말이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만날 파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파업 예고만 했죠.'


파업을 한 날도 있지만, 대부분 파업을 하지 않았다. 과거 80~90녀대 시절 가열하게 강하게 '투쟁'을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난 그 시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TV에 나오는 머리에 띠 두르고 주먹 쥐고 모여있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만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연말 임금협상이 다가오고 언론에 파업예정 소식이 전해지면 승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이것들 또 파업이네!"

하면서 씩씩댄다.


파업은 축제라 했다.


모 선배의 말이다. 도시철도공사라는 곳에 입사를 하고 그해 겨울에 첫 투쟁을 경험했다. 다른 분들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대모를 한 경험이 있었다. 386세대가 그러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대모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파업은 헌법이 노동자에게 준 유일한 특혜다. 개인은 너무도 약하기에 이런 방법을 최후에 써야 한다. 당시에는 파업을 한다면 직원 모두가 움직였다. 집회에 참석해서 노동가도 부르고 여러 노동단체에서 간부들이 와서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아멘" 대신 "투쟁"을 외쳤다.


파업 전야제에 직원들이 차량기지에 모인다. 새벽 타결 소식을 기다리면서 못 보던 얼굴들을 만난다. 술 한잔 기울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렇다. 그래서 선배는 파업을 축제라고 표현했나 보다. 조금은 이해를 했다. 


파업은 후유증을 낳는다.


선배의 말과 다르게 파업이 들어가면 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불안감에 휩싸인다. 새벽, 타결 소식이 아닌 결렬 소식이 들리면 축제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싶어 진다.


파업이 끝나도 후유증은 있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참석자들은 불 참석자들을 향해 아쉬운 소리를 해댄다.

불 참석자들은 아무래도 관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승진대기자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젊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단체로 행동하지 않는 선배들을 비겁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리고 현실.


이명박 시절 한 회사에 여러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복수노조'시대를 열었다.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알고 있다. 복수노조가 인정되면 회사에서는 입맛에 맞는 노조를 만들 수도 있다. 복수노조는 노동자의 힘을 떨어뜨리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회사와 노동조합의 대립보다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렇게 됐다. 1 노조, 2 노조, 3 노조까지 있다. 노동조합 백화점이다.

1 노조는 민주노총을 상위단체로 두고 있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려서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조합 간부를 오래 한 사람이 많다. 오래된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2 노조는 한국노총을 상위단체로 두고 있다. 1 노조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따로 나와서 만든 노조다. 투쟁을 앞세우기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때는 1 노조를 위협할 정도록 수가 많았다. 지금은 1 노조와 마찬가지로 조합원 수가 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 노조와 같이 연합해서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3 노조, 소위 젊은 사번들이 만든 노동조합이다. MZ노조라고도 한다. 박원순 시장 시절 사내 비정규직이 있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젊은 공채생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공정'을 외치는 정권에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정식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지금은 2 노조와 버금갈 정도의 조합원 숫자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들어올 신규직원들은 대부분 이곳으로 가입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노동조합 선거는 의미가 퇴색됐다. 하나의 노동조합 시절에는 조합 간부를 하기 위한 선거운동이 뜨거웠다. 지금은 대부분이 단독후보로 나온다. 자리만 바꿔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파업은 힘들어졌다.


지하철은 필수유지 사업장이다. 그래서 파업이 들어가도 필수인원은 참여하지 못한다. 완벽히 돌아가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대부분 표가 아닌 카드를 사용하기에 지하철 이용이 불편하지 않다. 열차만 잘 다니면 된다.


3 노조는 파업에 대한 반대를 밝혔다. 인원감축이 발생된 문제가 예전 노조가 전환진을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노조의 말도 일리가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들어오면서 갑자기 몇 백명의 TO를 증가시켰다.

정권이 바뀌었다. 시장은 감축안을 밀고 나가겠다고 한다. 


3 노조와 무노조의 인원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파업에 들어가도 1,2 노조에 속해있지만 참여할 인원은 많지 않다. 다수가 참여하던 파업이 아니다. 지금은 파업에 참여해서 징계를 맞으면 안타까운 시선을 받는다.


투쟁해서 얻어내는 임금인상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행정안전부에서 명시한 임금인상을 깨뜨리지 못한다. 임금에 대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주된 원인은 인원이다. 커다란 역사에 직원 둘이 지키고 있다. 가끔 역 안에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승객이 있다.


"아니, 아무리 봐도 직원이 없어요!"

"네, 직원은 두 명뿐입니다."

"이 넓은 곳에 직원이 두 명뿐이라고요?"

"네, 한 명이 쉬면 다른 곳에서 지원도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


솔직히 직원이 없어서 빠져나갈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출근 때마다 기도합니다.


'제발, 내 근무시간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게 하소서.' 

신실한 종교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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