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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Mar 16. 2023

반성에 대하여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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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드라마도 특히 '더 글로리'도 마찬가지다. 전반부 8부를 보고 혹평을 쏟아냈지만 후반부 8부를 보고 내 평가가 너무 일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글로리'에 대한 평가를 180도 바꾸면서 가해자의 반성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은숙 작가가 집필을, 안길호 감독이 연출을, 배우 송혜교, 임지연, 이도현, 박성훈, 정성일, 김히어라, 차주영, 염혜란, 김건우 등이 출연했다.


'더 글로리' 시즌1에 대한 내 혹평의 주요 요지는 복수극으로서 허술한 면이 있고 감정이나 전개에 밀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고,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끊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복수극이었다. 복선 회수나 복수의 논리적인 연결과 방법 등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 됐다. 물론 허술한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지점들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더 글로리' 후반부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영화와 드라마는 아예 다르다는 것이다. 앞선 리뷰에서 나는 '올드보이'와 '더 글로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우를 저질렀다. 복수라는 테마는 수많은 콘텐츠에서 다뤄졌던 만큼 조금 더 특별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해서 '올드보이'라는 작품과 같은 선상에서 다뤘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 한 인간의 영혼에 끼치는 끔찍한 영향과 그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루는 작품이었고, 충실하게 그 주제를 16부 동안 풀어나갔다. '올드보이'는 가해자 입장에서 끔찍한 복수를 당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작품이었기에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다만 '복수'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다른 잣대로 평가해야 하는 작품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더 글로리'가 훌륭한 것은 몰입감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더 글로리'는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와도 닮아 보인다. 불륜에 불륜, 살인에 살인, 배신과 배신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가해자들끼리 서로 할퀴고 물어뜯으며 자멸하는 모습은 '펜트하우스'의 천서진과 주단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가족이 가장 큰 상처이자 복수를 하는 존재가 되는 것 역시도 비슷하다.


죽이는 것은 복수가 될 수 없다. 김은숙 작가는 가해자에 대한 가장 처절한 복수가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나고 혼자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박연진을 가족에게 버림받도록 만들고 감옥에 가뒀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모두 가족에게 버림받지는 않는다. 문동은이 한 복수는 박연진이 죗값을 치르게 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도록 만든 것이다. 문동은 역시 학교 폭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친구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버림받고 철저하게 혼자서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전반부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는 문동은의 모습이 없었다면 모두에게 버림받고 혼자된 박연진에 대한 복수가 이토록 통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문동은처럼 영혼이 파괴된 피해자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 피해자들의 뒤늦은 용서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다만 가해자들은 조금 다른 인간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린다. 그가 반성하고 사죄함으로써 그들의 죄는 완벽해진다. 부인할 수 없는 죄로 인해 그들에 대한 처벌 역시 타당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반성하는 존재다. 반성하지 않는 인간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그들을 인간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 반성이 조금 더 나은 삶과 영향력을 준다. 다만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다르다. 죄를 지은 존재도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 행복이 반성 없는 행복이라면 거짓이며 가짜일 뿐이다.


복수라는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다음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콘텐츠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더 글로리'는 엄청난 내공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가 탄생시킨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욕망이 시청자를 완벽하게 설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스스로를 망치는 과정이 속 시원하게 그려졌다.


'더 글로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전재준이다. 가장 나와 거리가 먼 캐릭터여서 일까. 하는 짓이 신기하고 재밌다. 한 없이 무감각하면서 열등감을 감추지 않는 그런 면이 매력적이다. 그의 최후까지도 아주 잘 어울린다. 


여기에 더해 지상파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시원시원한 쌍욕과 마약과 폭력 등의 소재들도 낭비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쓰였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흐름을 깨는 PPL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더 글로리'는 대성공이다. 언제 적 김은숙이 아니 업계최고로서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이 또다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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