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서 있으면 바람이 가끔 멈춘다 빌어도 바람은 불지 않아 모래 사이에 흩날리는 바람과 그 바람을 마주하는 너와 너와 마주잡은 손 사이로 흐르는 바람들 그리고 또 바람과 바람과 바람과 사이 사이 비어있는 바람들과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바람과 모래사이의 틈과 다시 바람과 모래 사이의 틈과 바람은 연약하고 연약한 바람에 모래가 흩날린다 바람은 다시 불고 멈추고 다시 불고 이제 다시 부는 바람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날 바닷가에 서 있으면 빈 페트병 라벨이 바람에 휩쓸려서 파도 쪽으로 흘러간다 바람이 다시 불고 바람은 멈추고 바람이 다시 불었고 그 바람이 너와 붙잡은 손 사이를 스친다 다시 멈췄던 바람이 해변에서 너의 집 테라스로 불고 바람과 모래와 바람과 모래에 섞인 끈적함이 다시 바람으로 바람과 맞선 바람이 다시 방 안을 맴돌고 그 바람과 불어오는 바람과 테라스에 쌓인 모래와 바람과 모래와 테라스와 의자와 모래와 화분과 자그마한 풍경에 부딪힌 바람과 청아한 소리와 다시 부는 바람과 또 바람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광경을 바라보는 바람이 해변가에 불어온다 비어있는 바람과 텅 비어있는 바람이 부는 순간을 바라보며 나의 바람과 모래 사장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들과 돗자리 위로 흩어진 몇 알의 모래들을 지켜보는 일 바람과 모래와 바람과 모래와 바람과 모래와 다시 흩어지는 파도와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과 다시 바람 부는 바람
테라스에서 느낀 바람을 다시 느끼기 위해 텅빈 바다를 바라보고 텅빈 바다 위에는 뜨겁고 붉은 꽃망울이 터져나온다 새벽의 바다는 바람이 사라져 있고, 바람 보다 압도적인 꽃망울에 반사된 불빛에 너의 몸이 빨갛게 물든다 이제 바람이 스쳐간 흔적이 사라진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모래 위를 다시 걷는 일이다 내 전면에 부는 바람과 내 후면을 덮친 바람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게 될 때쯤 해가 진다 다시 불었던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온 파도가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서면 다시 축축해진 바람이 테라스에 머문다
사라지지 않은 바람과 다시 돌아온 바람이 그림자를 닮았다 바람의 연락이 끊겨 쓸쓸해진 해변 비어있는 해변을 채우는 바람과 사라진 너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어떤 바람은 연약하고 어떤 바람은 강하게 불어온다 내 손을 놓친 바람과 아이의 손을 스친 바람이 다시 만나서 바람의 이야기를 한다 바람과 바람과 바람과 바람과 바람이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 페트병처럼 하나의 흔적이다 테라스 바닥을 비친 햇살과 그 햇살을 덮은 바람이 불어온 자리에 불어있던 바람을 바라본다
바람을 바라보는 일은 연약한 모래를 들추는 일이며, 다시 생각해도 돌이킬 수 없는 바람을 다시 한 번 마주하는 일이다 나와 마주 본 바람이 너의 테라스에서 나의 베란다로 나의 화분 위에서 너의 마당으로 스쳐지나 갔을 것이다 잔잔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한 차례 비바람이 지나간 나의 테라스에 남은 바람은 그저 며칠 전 나를 스쳐간 그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