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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Jul 19. 2021

쿨 한척 하는'찐따'에 대하여

요시다 슈이치 '여자는 두 번 떠난다'를 읽고

"궁지에 몰렸을 때, 쓸만한 남자는 진실을 밝히고 오히려 화를 내지만 별 볼일 없는 남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만은 살아남겠다는 본능이 움직인다"


요시다 슈이치의 '여자는 두 번 떠난다'는 직업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남자들이 털어놓는 여자와 만남과 이별에 대한 연애 이야기를 담은 소설 집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무라카미 하루키 보다 다자이 오사무 보다 나쓰메 소세키 보다 좋아하는 작가다. 그가 좋은 이유는 감정 묘사 없이 상황만으로 공감하게 만든다. 묘사의 적확성이나 메시지보다 잠시라도 현생을 잊게 만드는 재주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여자는 두 번 떠난다'는 최근 집중적으로 고민이 되는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문득 다시 읽고 싶어 져서 꺼내 들었다. 이 소설 속 남자들은 하나 같이 한심하고 지질하다. 지질한 수준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별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의 애정을 시험하거나 약점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스토킹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할 솔직한 용기가 없는 것이 찐따인 것이라고 요시다 슈이치는 11편의 소설을 통해서 외치고 또 외친다.

11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장대비 속의 여자'를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는 우연히 만나서 함께 밤을 보내고, 그대로 화자의 집에 눌러앉는다. 이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가거나 요리를 챙겨 먹지 않고, 화자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사다 주는 음식만 먹는다. 그가 오지 않으면 여자는 하루 종일도 굶는다. 자신이 준 음식만을 기다리는 여자를 보고 화자는 기쁨까지 느낀다. 화자는 "매일 밤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사 가지고 오는 게 의무가 되었고 의무에서 봉사, 봉사에서 위로로 변했다. 사람을 위로한다는 게 이렇게 애틋한 일이라는 것을 더 빨리 알았다면 나도 좀 더 진중한 청춘을 보냈을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화자는 모든 것을 알고도 쓰레기처럼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여자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결국 그의 행동이 3번째 반복되자 떠나 버린다. 화자는 여자가 떠난 것을 아쉬워하고 행방을 찾지만 절박하지 않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는 작은 반전이 있다. 여자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리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가 오래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기쁨이다. 상대방이 나의 위로를 고마워하는 것을 느낀다면 지극한 행복이다. 그 행복이 심심하다고 여기고 뜨거운 열정에 몸을 던진 다면 남은 것은 재뿐이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이라는 유혹을 경험하지 못한 것도 완벽한 삶은 아니다. 이래도 부족하고 저래도 부족하다면 그 열정에 타고 남은 재를 뒤적거리며 후회하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다.

쓰레기 같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비겁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20대에는 즐거웠지만 지금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내가 이미 다 타고 식어 버린 재를 뒤집어쓰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후회들이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나의 애정을 볼모로 상대방을 쥐고 흔드는 것이 사랑이 아니며, 그 결말은 인질극을 일삼는 테러리스트가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또 다른 장점은 평범한 일상적인 대사들이 개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눈물이란 건, 비가 아니라 맑은 날과 비슷하다. 비가 사흘간 내리면 지긋지긋하게 여기지만 맑은 날이 계속되면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배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그 줄에 있었다. 줄을 서면서 까지 라면 같은 건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거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그걸로 만족해 버리니까" 등 슬픔과 아이러니를 담은 대사들이 심심치 않게 튀어 나온다. 그 우연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요시다 슈이치를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깨달음이 인생을 변하게 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 어떤 감정들을 자각하며 뒤돌아볼 필요도 있다. 잠시 스쳐간 연애를 추억하거나 앞으로 할 연애와 끝나버릴 연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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