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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Jun 15. 2021

거짓말 하지 않는 용기에 대하여

리처드 로퍼 '고독사를 피하는 법'을 읽고

외로움과 쓸쓸함과 고독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외로움사, 쓸쓸사는 없지만 고독사라는 단어는 존재한다. 사람은 외롭고 쓸쓸한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고독사는 고독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고독한 상태로 죽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고독하게 죽는 것은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관계의 실패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며, 그 실패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거짓말이다.


리처드 로퍼의 소설 '고독사를 피하는 법'의 앤드루는 가족이나 지인 없이 고독사 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뒷정리를 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장례식에 참여하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다. 앤드루는 오 년 전 전 직장에서 쫓겨났다. 직장에서 쫓겨나서 절박하게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면접관이자 새로운 직장 상사 캐머런에게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앤드루를 기다리는 것은 빈집과 LP판 그리고 오랜 기간 수집한 철도 모형뿐이다. 


직장에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앤드루 앞에 새로운 직장동료 페기가 나타난다. 유부녀이자 신입사원인 페기에게 조금씩 호감을 느끼는 앤드루는 자신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욕구와 지금까지의 삶을 지키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고독사를 피하는 법'은 줄거리만 봐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소설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좋은 요소들을 다 담아내려다보니 갈등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력직으로서 면접을 볼 때 가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그렇게 까지 고민하고 갈등할 요소인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불륜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 역시도 거슬린다.


이 소설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여기에 부가적으로 앤드루와 누나 사이에 정과 앤드루와 페기의 직장 동료들의 에피소드나 앤드루와 온라인 철도 모형 동아리 사람들 등의 관계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솔직함을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대다. 정치인, 연예인, 연인, 가족, 친구들에게 솔직함을 요구한다. 모두가 솔직함을 요구한다는 것은 아무도 솔직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솔직함을 요구하면서 솔직함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을 바보처럼 생각한다.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대우만 봐도 알 수 있다. 솔직해져서 손해를 보게 되면 피해자가 되고, 한국 사회는 피해자를 손쉽게 배제한다. 솔직해진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스스로 약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소위 '미국물'을 먹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최근 제시가 '대화의 희열'에서 한 말이 참 인상 깊었다. 자신은 센 언니가 맞지만 약한 면도 많이 있다고 고백한다. 어렵고 힘든 것을 극복해내고 이겨내기 때문에 세다고 말한다. 결국 솔직해지더라도 피해자가 돼서 약해지더라도 그 순간을 건강히 보내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한다. 약자와 강자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것을 갖는 것이 솔직해지는 길이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건강한 마음은 나이가 먹을수록 닳아 없어진다.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틀리고 썩어버린 채로 자기 합리화하면서 타락하는 '경향'을 가진다. 늙은 사람은 초조하고 더 불안하고 더 변화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솔직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고 짜증 나는 길이다. 솔직해질까 대충 살까. 답 없는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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