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해버린 일본의 광기
전국으로 뻗어나간 '미식의 모세혈관'을 타고 일본인의 밥상은 스테이크와 치즈로 빠르게 채워졌다. 버터와 크림 가득한 만찬 앞에서 기존의 달디단 술은 한계를 드러냈고, 이는 곧 '식사와 어울리는 드라이한 테이블 와인'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졌다.
문제는 다시 '포도'였다. 미국종과 교배한 하이브리드 품종(머스캣 베일리 A 등)은 훌륭했지만, 유럽 정통 와인의 그 깊고 섬세한 맛을 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농부들은 100년 전 실패했던 길이자 금단의 영역, '유럽종 포도(비티스 비니페라)' 재배에 다시 도전장을 던진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한국 대형 마트에서 와인코너에 가면 한 두 번 정도는 들어봤음직한 유럽 전통 와인 포도 품종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의 비는 억세고 잔인했다. 유럽의 양조용 포도는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환경을 좋아한다. 반면 일본은 포도가 한창 익어가야 할 6~7월에 장마가 찾아오고, 수확기인 9~10월에는 태풍이 들이닥친다. 습기를 머금은 포도는 병들었고, 기껏 열린 열매는 수분을 잔뜩 머금어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1970년대, 수많은 와이너리가 야심 차게 유럽 묘목을 심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일본 특유의 집요한 '장인 정신(오타쿠 기질)'이 발동한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재배 방식을 바꾸면 될 일이었다. 농부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비가 문제라면, 포도나무에 우산을 씌워주면 되잖아?"
이때 등장한 것이 일본 와인 풍경을 상징하는 독특한 재배법, '비가림 재배'다. 포도나무 머리 위에 비닐 갓을 씌워 빗물이 포도송이에 직접 닿지 않게 막는 방식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효과는 혁명적이었다. 병충해가 줄어들고 포도의 당도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포도나무를 정글처럼 방치하지 않고 가지를 일렬로 정리해 통풍을 극대화했다. 척박한 경사지를 찾아 산비탈을 깎았고, 배수가 좋은 땅을 찾아 헤맸다.
땅과 하늘의 악조건을 인간의 기술과 끈기로 메워나가는 세월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일본에서도 "제법인데?"라는 말이 나오는 레드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달달한 포트 와인만 만들던 일본이 드디어 세계 와인 지도(World Wine Map)의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준비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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