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지옥

자유를 안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by 루나

진도를 열심히 나가다 보면 지필고사 기간에 다다른다. 그리고 몇 시간 남짓 남으면 자습 시간을 준다. 진도를 나갈 때는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자습이라는 말에 갈 길을 잃는다. 열심히 뭔가를 하는 학생 옆을 지나가면 움찔하는 자도 있다. 열심히 하는 척도 힘들 것이다. 어디까지 학생에게 자유를 줘야 할까. 잔소리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창 예민할 시기에 그들의 죄책감을 건들며 협박 아닌 협박처럼 잔소리한 나를 회개한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강화할 수 없는 우리의 직업병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디까지 학생들이 자유를 안고 갈 것인가. 아직 전두엽이 생성되는 중이라니 이성적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그들을 돕는 건 우리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성인이 되고 나서 황당했던 게 바로 주어지는 나의 두발과 여가시간 그리고 통금시간. 물론 부모님께 종속되어 있으나 맘껏 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혼날까 봐 안절부절못했던 시간은 늘 공존한다. 학생들은 늘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비슷한 점들이 보인다. 어느 정도 자신들을 통제해 주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책임과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무게감. 얼마나 고될 것인가. 그 나이 때 느끼는 그 고독감과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그 느낌. 나는 이 나이 때에 이렇게 큰 책임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서 학생들을 통해 달라진 시대의 무게를 다시금 느낀다.

수업 때 망각곡선을 설명하곤 한다. 지금 기억하는 메모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기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복습하고 모르는 것을 반복하며 망각곡선의 하염없이 떨어지는 선을 늦추고 높이라는 것. 학습의 효과는 잔인하다. 잠자는 것조차 죄책감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시간 다른 이는? 공부하겠지. 씁쓸하지만 생존의 본능에 따라 잠을 청하곤 한다. 그들의 학창 시절. 나는 그들의 기억 속 어딘 가에 단기기억에서 사라져 갈 한 사람.

미술 시간에 비빔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죄송한 그 선생님. 지금은 거의 70대가 훌쩍 넘어갔을 그분. 얼마나 여유로운 시간이었으면 도시락 싸 오는 그 시절 뒤에서 밥까지 먹어도 된 걸까. 교단에 서보니 유난히 죄송한 선생님들이 스쳐간다. 그리고 감사한 선생님도 지나간다. 애매한 성적의 구간인 나에게 국립대지만 교사의 길을 추천해 주신 분. 좋아하는 연극을 계속해보라고 하셨던 담임 선생님. 하지만 늘 지각을 하곤 해서 대학생이라는 별명까지 듣다가 결국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 시간 어떤 길로 가게 될까 망막할 때 그저 재밌었던 학창 시절. 높이 솟은 산까지 등반하며 등하교를 했던 그 시절.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당당하게 입고 시내 거리를 깔깔거리며 다녔던 그 시절. 나의 고등학교 여학생의 모습은 여기저기 모났지만 자유를 향해 컴퍼스를 돌려댔던 것 같다. 첫 연극 무대를 섰던 경험, 첫 영어 회화 수업을 듣다가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이 해주시는 떡볶이를 가정실습실에서 먹는 내 모습, 친구들과 연습하며 진실 게임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던 그날 저녁. 나만의 자유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끝나지만은 안았다. 망각곡선의 이론처럼 단기기억에 머물렀다가 사라졌을 법한 기억들이 아직 나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다. 복습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함수의 대응처럼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바로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는 것처럼. 들쑥날쑥 계획에 맞지 않았고 멋지지도 않았지만 나의 자유가 있었다. 그 시간이 기억에 남아서 선물처럼 나의 이 시간에 펼쳐진다. 잔인한 학습의 효과가 성적의 자극은 되겠지만, 몇 번의 강렬한 자유를 추구한 효과도 인생의 곡선에서 꽤 오래 남는다.

어디로 갈지 확실히 아는 자가 누가 있는가. 우리는 좌표에서 걷다가 뛰다가 내려갔다가 평지를 걷거나 점프한다. 그냥 일직선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자유가 주는 부담감을 안고 가지만 늘 우리 안에 꿈틀대는 것. 나를 설레게 하는 그것.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 자유를. 조금씩 실행해 나가느라 우리의 좌표는 질서가 없지만 의미가 있다. 각자의 좌표에 자유라고 쓰면 된다. 자유 안에서는 오히려 일직선의 삶이 이상한 것이다. 평범한 것도 감사하지만 좌충우돌을 겪었기에 좌로나 우로나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안다. 조심해야 할 것들도 날것으로 알게 된다. 책임이 따르지만 자유 안에서 이 길에 서 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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