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스친다. 스친 말들이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어차피 말해줄 수 없는 진실인데. 아니, 차라리 말할걸 그랬나. 괜한 심뽀가 생길 때도 있다. ‘양심‘이라는 책에 나왔던 차마, 어차피, 차라리. 양심 속에서 꿈틀대던 그 단어들이 삶이 될 때가 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갈등과 수많은 선택들. 나는 아직 멈춰 있다. 일상 속에서 다가가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 나와 화해할 그 시간들. 지금 내 안을 덮고 있는 먼지 나는 세상들. 풀기 힘든 그 시간들.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갈등할 때 양심이라는 것이 발동한다. 늘 규칙 안에 살지만 바쁘고 힘드니까. 다 지킬 수 없잖아. 그렇게 외면했던 순간들. 끌어당겨도 그 소리를 놔버린 순간들. 내 안에서 끝없이 소리치는 소리들. 결국 양심을 따라 살아갔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였기에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 외부와의 연결 통로가 끊긴 듯이 살면 금세 여기저기 삐죽하다. 삐죽삐죽한 틈 사이로 새어나가는 삶의 중요한 것들. 놓쳤던 걸까. 괜찮아서 버린 걸까.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괜찮지 않았던 순간들이 어느새 현재의 시간 속에서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갈등을 피해온 것일까. 말하면 상처받을 테니까. 아니면 듣기 싫어할 거 같아서. 가족 안에서의 단단한 계층구조라고 느꼈다. 나의 캐릭터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그 옛날의 시간 동안 불거졌던 눈물, 억울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진실들, 괜찮지 않지만 평화를 위해 꾹꾹 담아 놓은 감정들. 나는 변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래서 완성하지 못했다. 옛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직 할 말이 있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정직하지 않은 평화를 선택한 것인지. 나에게도 할 말이 있다. 왜 정직하지 않냐고. 이렇게 계속 지내는 게 맞을까. 상처의 영역은 가고 싶지 않기에 나도 상대방도 상처받기 전까지. 거기까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다. 회피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나의 희생과 헌신을 갉아먹도록 놓고 싶지 않다. 그렇게 가벼운 한 마디로 반응하라고 나의 삶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말은 쉽다. 참 쉽다. 그래서 어렵다. 솔직했던 순간의 파편이 아직 나의 살을 파고 뜰 때가 있다. 솔직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 또한 상대방의 살을 찌를 수가 있다. 예의 껏. 교양 껏. 최대한. 최대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족할 것이다. 나만의 생각이므로. 상대방에게 솔직하라고. 똑바로 말하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 솔직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고 저질러야 한다. 상대방을 향해 배려하고 있는 것인지.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상대방에게 나의 판단을 투영한 건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다면 솔직함이 무기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감정을 배려받지 못했지만. 나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할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남겨진 상처를 보고 위로하고 싶다. 수많은 갈등과 선택이 아직 내 앞에 있다. 한 개씩 정답을 알려 달라고 떼쓰지 않겠다. 왜 나에게 이렇게 대하냐고 짜증 내지 않겠다. 힘들다면 내 양심이 시킬 때 묻고 싶다. 나를 소중하게 대했는지. 누군가는 나에게 소중하게 대하지만 가볍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들에게 묻고 싶다. 나를 소중하게 대했는지.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나의 마음이 힘들다고 소리칠 땐. 차라리 말하고 싶다. 차라리 말할걸 그랬나 하며 가슴앓이 하던 상처는 그만 간직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