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마음에 스며드는 감정들
가을을 올려다보곤 한다. 감정이 앞선 것 같을 때. 내가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감정을 잘게 부수고 흩날린다. 가을에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정지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퀘스천마크들. 갑자기 비눗방울처럼 여기저기서 톡톡 가볍게도 터진다. 그렇게 다가온 너. 너를 안게 되었다.
귀여운 털북숭이 식구가 생긴 지 2주가 되었다. 25년 5월 15일에 태어난 하얀 털 복숭이. 나 혼자도 버거워하던 나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생명체. 책임지지 못할 일은 만들지도 말자였는데. 지금은 집에 활력이 생겼다. 이리저리 이끌리듯 털북숭이를 뒤치다꺼리하곤 한다. 한 번씩 온갖 후회 및 귀찮은 감정이 몰려올 때가 있다.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작은 생명체를 보며 다시 나를 탓한다. 말도 못 하고 엄마를 떠나 낯선 진열장에서 또 낯선 아파트로 온 아이. 책임지지 못하는 견주가 나구나.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며 끌어안는다. 비가 오는 어느 9월. 마음 따라 구경 갔던 그곳에 진열되어 있던 아이. 눈이 마주친 순간 떨리는 그 눈망울 속으로 내가 다가가버렸다. 어떻게 두고 올 수가 있는가. 현실적인 시간으로 돌아와 가격을 묻고 할인가에 마음이 동한다. 돈이 많이 나가고 케어하기 버겁다는 이유를 대며 사양하려고 했다. 그때 들은 매니저님의 말. “생명체잖아요.”라는 말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내가 귀찮아해 오던 것들이 나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싫은 건 싫지만. 비가 내리는 날 강아지를 캐리어 가방에 싣고 조심조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패키지로 구매한 강아지 용품들이 여러 보따리다. 남편이 낑낑대며 들고 함께 몸을 실었다. 두어 정거장을 지나 목적지에 다다랐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사뭇 다르다. 새 식구를 데리고 가는 이 설렘. 고생도 하겠지. 하지만 고생만 시킬 것 같지 않았다. 너무 귀여운 생명체니까.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 많아서 고민거리를 늘리기 싫었는데. 멍해진 그날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내가 느끼고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면 높고 그냥 예쁘다. 복잡한 삶이 될 수 있는데 흰 털북숭이 덕분에 단순해보려 한다. 그 아이를 보면 배변을 처리하기가 귀찮다. 하지만 귀찮다고 느끼는 감정이 내 이기심 때문인 거 같다. 물론 귀찮은 일들이 산재하다. 사랑과 관심을 고파하는 그 눈망울을 보았는가. 인형처럼 생긴 애가 날 보고 짖는다. 목욕할 때 보니 몸뚱이가 너무 작다. 그리고 너무 아기다. 엄마가 얼마나 보고플까. 내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부담스럽지만 안아본다. 교육도 시켜야 한다는데.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실패하곤 한다. 가을 하늘이 깊고 어디론가 기대고 싶은 날이다. 이 아이도 기댈 곳이 필요하겠지. 깊어진 가을처럼 나의 마음 씀씀이도 깊어질 수 있을까.
바람 따라 걷다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내게 왔다. 그렇게 네가 왔다. 가을바람처럼 은은한 눈빛으로 나에게 담겼다. 내가 너를 데려와도 되었을까.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은 복잡하고 싶지 않다. 바람 따라왔으니 바람 따라가겠지. 나도 그렇게 너에게 힘을 들이지 않을게. 가을 낙엽을 밟고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을까. 너도 나에게 그렇게 발자국처럼 남은 거 같아. 소리 없이 나를 바라보면 지긋이 미소가 번지는 나의 얼굴. 나에게 미소를 선물해 준 너구나. 배변만 어서 잘하자 아가. 나에게 할 일은 많이 주지만 쉼표를 준 우리 아가. 귀여운 털 복숭이. 건강하자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