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물고기 Jan 26. 2024

흔한 이별 후에

일상 에세이

500일 기념일이었나

우리가 만난 지 3주년이 되는 날 열어볼 편지를 썼다.

설렘과 장난스러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카페에서 함께 편지를 쓰고

근처 어딘가에 고이 묻었다.

3주년이 되는 날, 이 카페에서 만나

서로에게 쓴 편지를 꺼내 읽어보기로 했다.


3주년이 되기 전에

우리는 헤어졌고

그 편지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쓴 편지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았다.

편지는 화석처럼 묻혔다.



나중에 그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3주년이 되는 날, 편지를 썼던 그 카페에서

나를 기다렸노라고.

그냥 기다리기 멋쩍어

커피를 수없이 시켰노라고.

혹시에서 역시로

기대에서 체념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커피 몇 잔이면 충분했겠지.


나는 나의 가정을

그는 그의 가정을 꾸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랑한 적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삶을 산다.


처음의 설렘과 들뜸

열정과 격정의 한가운데

마지막의 슬픔과 체념

그 흔한 사랑과 이별의 과정들


몇 년 후를 기약하며

타임캡슐을 묻던 천진했던 마음과

폭풍처럼 몰아쳤던 슬픔.

그런 것이 지나간 자리조차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처음이라 그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