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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Jan 31. 2024

너를 만난 세계

육아 에세이

돌이켜보면 대체 무슨 재미로 학창 시절을 보냈나

싶었을 만큼 나는 모범생의 삶을 살았다.

요즘이야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이것저것 다 잘하고

즐기는 시대지만 난 그저 그런 80년대생 모범생이었다.

게임도 안 하고, 그 시절 유명한 아이돌의 팬도 아니었으며, 핸드폰도 대학교 때 처음 샀고, 흔한 노래방도 가지 않았다.

자랑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며 그저 사전 설명을 위한

나의 과거 소개다.


그랬던 내가 아들 둘을 키우며 이런저런 진귀한(?) 경험을

해보곤 하는데

어제는 무려 기사까지 떴던 지옥의 스타필드 수원에

오픈런을 갔다.

사람 많은 것과 붐비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아무리 핫한 곳이라도 오픈초기나 남들이 다 가는 때는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들들이 좋아하는 브롤스타즈 팝업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일 오픈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밖에 늘어져 있는

줄에 합류하여 기다리고,

큐알로 예약을 하고, 문을 열자 좀비 떼처럼

자동으로 밀리는 군중에 끼여 들어갔다.


주로 남자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았는데

검은 패딩부대와 같았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직업이 초등교사인 나는

혹시나 나를 아는 학부모나 학생이라도 만날까

괜시리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이겨내고 드디어

오픈 런. 이란걸 했다.

굿즈샵에서 브롤 캐릭터 가방과 인형을 하나씩 사고,

포토존에서 사진 찍고

게임체험을 하는 동안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북적거림, 기다림, 군중 등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다 거쳤다.

하지만 가방을 메고 흐뭇하게 인형을 안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띤 두 아들을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날들도

영원하지 않다.

어느 날이 되면 엄마는 그저 돈만 주고 친구들과

이 모든 것들을 함께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필요한 것만 하며 재미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나의 아이들은 쓸데없는 것도 좋아해 보고

그 좋아하는 마음을 누려보는 그런 시절을 보내봤으면

좋겠다.

행복은 미뤘다 일시불로 돌려받는 적금이 아니라

매 순간 차곡차곡 느끼는 거니까 말이다.

나만의 세계가 아닌 너를 만난 세계는 다채롭고

신기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육아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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