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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Feb 07. 2024

존재론적인 고민

육아 에세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가

침대에서 잠들기 전 뜬금없이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라고 읊조리는 것이다.

순간 뭐지? 지금 인생에 뭔가 불만이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갈 찰나

"내가 스컹크로 태어났다면, 방귀쟁이가 됐을 텐데"라고

이어 말했다.


첫째와 나는 웃음기 없는 그 진지한 말투와

그에 걸맞지 않은 엉뚱한 워딩에  

빵 터지고 말았다.

굉장히 존재론적이고 심오한 질문에 이어지는

어린이다운 가정법의 내용이 중화되어

무거우면서도 위트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맞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강아지나 독수리,

혹은 스컹크나 민들레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존재론적인 고민도 해본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의미부여)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난 걸까(한탄)

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 결국

그냥 태어난 김에 산다로 귀결된다.


스컹크가 아닌 인간이라서

과거를 후회하기도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남들과 비교도 한다.

고만고만한 인간들 사이에서 더 특별한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수학문제집을 풀며 인생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첫째에게

그러게 돌멩이나 바람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라고 말해주며 빙긋 웃는다.

가끔은 차라리 햇살이나 바람,

하늘을 나는 새나 길가에 핀 꽃으로 태어났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불필요한 고통과 불행을 겪기도 하고

명확하지 않은 희망과 꿈을 품기도 한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인간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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