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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Mar 20. 2024

배려

교실이야기

6학년 영어 교과전담을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비 오는 아침 등굣길이었다.

진우가 내 앞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

옆에는 몇 학년 어려 보이는 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진우가 우산을 동생 쪽으로

기울이고 가는 것이 아닌가.

기특한 마음에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

"진우 동생이야?"

"아니요"

"그럼 아는 동생이야?"

"아니요"

"오~모르는 동생을 씌워주는 거야?"

그러자 진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교감선생님이 씌워주라고 해서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오늘 처음 보는 동생이 비를 맞을까

동생 쪽으로 기울어진 우산의 각도에서

교감선생님이 시키지 않았어도

진우는 우산을 씌워주었을 거라는 걸.

그날 진우네 반 영어시간이 되자 나는

아이들 전체 앞에서 칭찬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진우를 봤는데....."

반 아이들이 일제히 "오~~~"하는 리액션에

진우는 머쓱해하면서도 비져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베풀었던 배려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수많은 배려의 기회는 얼만큼이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초등학교에서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배운다.

알았으나 잊어버린 것들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들

이런저런 핑계로 합리화했던 것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관하여

나는 오늘도 학교에 출근해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이 무엇을 가르쳐줄까 하는

약간을 설렘을 안고 말이다.


*진우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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