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부탁

교실이야기

by 무지개물고기

우리 반 상훈이는 줄을 서서 이동하는 중에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거나 줄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동시에는 늘 맨 앞에서

상훈이 손을 잡고 가게 되었다.

어제 급식실에서 교실로 이동하는데

맨 앞에 있던 주영이가 갑자기 "선생님 저도 손잡아주세요!"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손엔 상훈이, 한 손엔 주영이 손을 잡고 교실까지 걸어갔다.



"손 잡아 주세요"라는 무해하고 순도 높은 부탁에

나는 갑자기 마음속 빗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주영이는 말 그대로 그저

손을 잡아달라는 표현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손 잡아 달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나 좀 도와달라고,

나 좀 봐달라고 손을 내밀거나

손 잡아 달라는 비슷한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많이 맞을 때도

친한 친구에게조차 공감을 위한

어떤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이 악물고 버티거나 혼자 삭히는 쪽을 택했다.

교실에 있는 열한 살 아이들은 때론 나에게

엄마처럼 이것저것 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가령 우유를 열어달라거나

요플레 뚜껑을 따달라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말이다.



주영이처럼 큰 소리로 "손 잡아 달라"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분명 손을 잡아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교실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는 어쩌면

손잡아 줄 아이가 없는지 잘 살펴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름은 가명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할머니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