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래희망은 늙은 여자

일상 에세이

by 무지개물고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젊은 시절의 들뜸과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이 새겨지는 일

하나씩 꺼내볼 추억이 서랍 켠켠이 채워지는 일

소녀는 젊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새파랗게 젊은 여자보다

약간 나이 든 여자가 되고 싶었다

축제가 끝난 뒤 텅 빈 광장에서

고요히 서 있고 싶었다

새빨간 장미보다

끝이 조금 바랜 5월의 장미처럼

농익은


나는 늙은 여자가 되고 싶다

아들이 너무 일찍 철들지 않도록

가끔 엄마를 찾을 때 곁에 있도록

아들의 자람과

아들의 아들의 자람을

지켜보고 싶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얼굴로

머리카락이 센 남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막걸리 한 잔 들이켜고 싶다

꽃사진이 가득한 사진첩과

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은근슬쩍 자식 자랑도 해보며

나의 아들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때까지만

딱 그만큼만 늙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불편한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