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
정우는 학기 초부터 신경이 많이 쓰이는 아이였다.
작년에는 5교시가 되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역시나 첫날부터 눈에 튀었고 산만했으며
아이들과 갈등도 잦았다.
정우가 작은 변화를 보여주면 그 작은 변화를
콕 집어 칭찬도 해주고 달래기도, 혼내기도 했다.
정우로 인해 스트레스 가득한 표정인 아이들,
짜증을 폭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글씨를 휘갈겨 쓰던 정우는
어느 날 글씨를 또박또박 쓰기도 했다.
수학을 잘하는 편이라 들었는데 단원평가를 잘 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러 아이들 전체 앞에서 말했다.
정우가 이번에 수학 시험 점수가 높다고
정우가 요즘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정우가 이렇게 글씨를 잘 쓴다고
그리고 정우에게도 따로 말하기도 했다.
"정우야, 오늘 정말 잘했어. 내일도 오늘처럼만 하자~"
"정우아, 글씨 진짜 잘 썼네.
앞으로도 이렇게 쓰면 정말 좋겠어!"
"정우야, 요즘 친구들이랑 다툼도 별로 없고 잘 지내는 것 같네~" 등등
정우가 우는 날도, 화내는 날도,
발을 쿵쿵 구르는 날도,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는 날도
거의 0에 수렴하고 있다.
"선생님, 정우가~"하고 나에게 오는 아이들도 없다.
질량보존의 법칙인지 오히려
다른 아이들 간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제는 수현이가 하교무렵 정우에게 다가가 말한다.
"정우야, 요즘 학교생활 재밌지?"
"응~"
"오늘 잘했어. 내일도 오늘처럼만 하자~"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내가 정우에게 하던 말을
수현이가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최근에 읽었던 김연수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읽었던 한 부분이 떠오른다.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