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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May 30. 2024

물건이 사라졌다

교실 이야기

우리 반 교실에서 며칠 동안 물건 몇 개가 사라졌다.

내 책상 서랍과 책상 옆 보관장에 있던 물건들이다.

스테이플러, 과자, 라벨기 등 사소한 것들이라

찜찜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교실 자물쇠 비번을 아는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인데

그걸 물어봐야 의심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수연이가

다른 친구의 물건을 자기 것이라 우기다

결국 정황과 아이들의 목격담을 종합해보니

수연이 물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사건이 연달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잃어버렸던 대용량 큰 과자 봉지가

잃어버린 그날에 수연이 가방에 들어있는 것을

본 아이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그 과자를 어디서 샀는지

왜 가져왔는지 물어보니

수연이는 횡설수설하며 말을 자꾸 바꾸었다.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흔들리는 눈빛, 자신 없는 말투, 번복되는 내용


부모님에게 연락하기 전 고민이 되었다.

부모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들었을 때 결코 유쾌한 내용이 아닐 뿐더러

오해할 수도 있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긴 조사 결과 아이들 물건도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내 물건들은 그냥 지나가면 되니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결코 수연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결국 부모님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게 어제 일이다.

오늘 아침 수연이는 편지와 함께 포장지에 예쁘게 싼

스테이플러와 심을 가져와 내 책상에 두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제가 안 좋은 짓을 한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부끄러워서 '죄송해요' 한마디 하고 달아나도 이해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진짜 죄송해요"

이 편지와 가져간 물건을 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나는 수연이에게 나의 비밀을 들려주었다.

"수연아, 사실 선생님도 너만 할 때 마트에서 과자를 훔친 적이 있어. 안 들킨 줄 알고 처음이 여러 번이 되었는데 결국 그 가게 주인은 알고 있었더라고. 알고 있으면서 몇 번의 기회를 더 줬던 거야. 선생님도 그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들키지 않는 그 스릴을 즐겼는지도 몰라. 수연아, 누구든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어. 너도 이번 경험으로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 거야.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용기 내줘서 참 고맙다. 어른도 잘못한 걸 인정하는 건 참 힘든 일이거든"

수연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무결점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인간의 삶이 아니다.

민망하기도 했을 수연이에게 말해줄

나의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으로서 체면은 좀 구겨졌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수연이는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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