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을 움직이다

일상 생각

by 무지개물고기

우리는 종종 감동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감동시키거나 감동을 받기 위해선 의도가 없어야 한다. 의도가 짐작되거나 의도를 가지는 순간 순수한 감동은 불가능하다. 해질 무렵의 풍경은 의도를 가지지 않고 나를 감동시킬 수 있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떠 있는 한 밤의 보름달 또한 마찬가지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너무 많은 의도를 가지고 그 의도는 감동의 빛깔을 퇴색시킨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의도 자체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지만 그 의도를 짐작하는 순간 감동의 강도는 줄어든다. 의식하지 않고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오는 감동의 강도는 더 강렬하다.


아이의 안경이 부러져 아침 일찍 안경점에 간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이고 안경점은 아직 오픈하기 전이라 문 앞에서 서성였다. 안경점 맞은편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아이와 나에게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종이컵 두 잔을 내밀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가 줄 것도, 내가 받을 것도 없는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친절이다. 물론 동네사람인 내가 언젠가 그 가게에 들를 수 있을 거라고 가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런 상황은 꽤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어학사전에서 감동의 뜻을 찾아보았더니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나와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바윗덩이를 옮기는 것만큼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깃털하나를 옮기는 것만큼 쉽다. 친절한 말과 행동 뒤에 계산된 의도가 보일 때 그 친절은 더 이상 친절이 아니다. 악어의 눈물이 전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이유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스스로 인지할 때 벅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새털처럼 자유롭다. 이런 감동의 순간은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기다리던 손님처럼 언제나 반갑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물과 풍경이 내 마음을 움직여주기를 언제나 기다린다. 마음은 그저 머무를 때보다 움직일 때 진짜가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려하지 않은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