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우리는 종종 감동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감동시키거나 감동을 받기 위해선 의도가 없어야 한다. 의도가 짐작되거나 의도를 가지는 순간 순수한 감동은 불가능하다. 해질 무렵의 풍경은 의도를 가지지 않고 나를 감동시킬 수 있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떠 있는 한 밤의 보름달 또한 마찬가지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너무 많은 의도를 가지고 그 의도는 감동의 빛깔을 퇴색시킨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의도 자체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지만 그 의도를 짐작하는 순간 감동의 강도는 줄어든다. 의식하지 않고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오는 감동의 강도는 더 강렬하다.
아이의 안경이 부러져 아침 일찍 안경점에 간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이고 안경점은 아직 오픈하기 전이라 문 앞에서 서성였다. 안경점 맞은편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아이와 나에게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종이컵 두 잔을 내밀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가 줄 것도, 내가 받을 것도 없는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친절이다. 물론 동네사람인 내가 언젠가 그 가게에 들를 수 있을 거라고 가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런 상황은 꽤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어학사전에서 감동의 뜻을 찾아보았더니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나와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바윗덩이를 옮기는 것만큼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깃털하나를 옮기는 것만큼 쉽다. 친절한 말과 행동 뒤에 계산된 의도가 보일 때 그 친절은 더 이상 친절이 아니다. 악어의 눈물이 전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이유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스스로 인지할 때 벅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새털처럼 자유롭다. 이런 감동의 순간은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기다리던 손님처럼 언제나 반갑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물과 풍경이 내 마음을 움직여주기를 언제나 기다린다. 마음은 그저 머무를 때보다 움직일 때 진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