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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 연습

일상에세이

by 무지개물고기

첫째가 수학학원 숙제를 하는 걸 보았는데 문제를 꼼꼼하게 안 읽고 실수를 자주 하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서 문제 꼼꼼히 읽고, 식이나 과정을 쓰고, 문제 푼 다음 검토하는 것까지 꼭 해야 한다고 말하고 옆에 앉아서 푸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고 있어도 그런 습관이 한 번에 고쳐질 리는 없었지만 엄마가 보고 있으니 조금은 신경을 쓰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조금 어려운 문제가 등장했다.

"예준아, 네가 그냥 쑥쑥 푼 문제들은 그냥 확인용이고 수학 실력 향상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문제들이야. 약간 복잡해 보이고 금방 안 풀리는 문제를 네 힘으로 풀어냈을 때 조금씩 실력이 오르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선 타이머를 한 시간 맞췄다.

한 시간, 두 시간 걸려도 되니까 풀어보자.

한 시간 동안 온전히 그 문제에 집중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 시간이 지나 타이머 알람이 울렸고 그때까지 그 문제는 풀지 못했다.

잘 시간이 훨씬 지난 터라 오늘은 늦었으니 우선 자라고 했더니 한 시간 동안이나 고생하고 괴로워했는데 답도 찾지 못한 게 억울했는지 훌쩍거렸다.


"한 시간 동안 생각했는데 얻은 것도 없잖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예준아, 왜 얻은 게 없어? 이 문제를 푸는 동안 잘 안 풀려서 짜증 나고 계속 생각하는 거 힘들었잖아. 그런데 그 어려운 감정들을 이겨내고 앉아서 끝까지 고민했잖아. 공부를 한다는 건 그런 거야. 어렵고 지루하고 힘든 감정과 시간들을 견뎌내는 거. 이 문제 답을 내는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오해할지도 몰라서 하는 말인데 엄마는 네가 1등 하고, 서울대 가고 엄마가 바라는 직업 갖는 걸 원하는 게 아니야. 물론 네가 공부 잘하면 당연히 기분은 좋겠지. 공부 잘하는 자식 싫다는 부모 있을까? 근데 그건 결과의 문제야. 네가 공부하는 태도와 그 과정이 충실했는데도 결과가 잘 안 나오면 그건 능력부족일 수도 운이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같은 결과라도 너의 태도과 과정이 문제라면 그건 엄마가 잔소리하고 혼낼 거야. 지금은 초등학생이라 성적을 정확히 모르지만 중, 고등학교 가서 등수랑 성적이 나와도 결과만 가지고 너와 관계를 망치는 일은 하지 않기로 엄만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엄마가 그러면 오늘 했던 다짐을 기억할 수 있게 다시 이야기해 줘.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인생을 사는 것과도 같아. 인생을 살 때도 풀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너에게 닥칠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어렵고 복잡하니까 삶을 포기할 거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애쓸 거잖아. 엄마는 오늘 너한테 공부하는 것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꼭 알려주고 싶었던 거야......"

아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듣고 있더니 자기도 한 마디 한다.

"엄마, 내가 혹시 중학교 때 사춘기가 와서 내 인생 상관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가 꼭 잔소리해 줘~ 책에서 보니까 어차피 고등학교쯤 되면 다시 착하게 돌아온대~"


그 다음날, 아빠에게 "아빠, 어제 나 수학문제 푸느라 1시까지 있었어. 그리고 엄마의 덕담과 다짐을 10분 정도 듣고 잤지."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내 잔소리가 꽤 유익했나 보다. 내 다짐은 진심이다. 지키지 못할까 봐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미리 공언하는 것이다. 공부 1등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난관을 포기하지 않고 풀어가려고 애쓰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나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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