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얼짱시대

그리운 싸이월드

by 무지개물고기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데 초반.

중국역사에 춘추전국시대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얼짱시대가 있었다.

하두리캠이 유행했고 45도 각도 셀카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SNS를 매개로 전국의 얼짱들이 컴퓨터 화면 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소위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하두리캠을 찍어보겠다고 그 당시 유행이었던 쌍꺼풀 테이프를 붙이고 동네 PC방에 갔다. 이리저리 얼굴 각도를 맞춰가며 내 실제 얼굴 같지도 않은 과도하게 화사하고 인위적인 캠 얼굴을 보면서 다소 흡족해했던 기억이 있다. 내 얼굴도 나름 괜찮아하면서. 바야흐로 얼짱 전성시대였다. 각 학교, 각 지역의 내로라하는 얼짱들이 속속들이 등장해서 감탄과 부러움을 샀다. 사람은 누구나 없는 걸 갈망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나는 다행히(?) 여고를 나왔다. 남자애가 ‘못생겨서'라고 말할 일도,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고백이나 장미꽃을 받을 일도 없는. 대학입학이 온 우주의 단 하나의 목표인 양 흘러가는 고등학교 시기 좋은 성적은 나라는 사람의 좋은 간판이 되어주었고 실장, 학생회, 영어 동아리부 등의 사이드디쉬와 함께 학교라는 공간 교실 안에서 설 수 있는 자리가 되어주었다. 나는 지방 광역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생활하였는데 내가 입학한 학교는 예체능 전공자들이 많이 입학하는 공립고등학교였으며 예체능을 전공하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소위 '노는 애'들도 꽤 있었으며 예쁘장한 외모의 아이들 역시 많은 편이었다.


1학년 초,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각각 중학교에서 '놀던 애'들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동족을 알아보듯 서로를 알아보고 다른 반일 지라도 금방 무리를 지었다. 다른 반의 무리 중 한 명이 우리 반에 와서 마치 버스 뒷자리처럼 인싸들이 주로 앉을 수 있었던 교실 난방기 위에 앉아있던 나에게 비키라고 했던 것 같다. 안 비키자 뭐라고 욕을 한 것 같은데(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여기서 눌리면 안 될 것 같다는(그렇게 찌질한 포지션에 서기 싫다는) 막연한 깡으로 나도 욕으로 맞대응을 했다. 안경 쓴 어리숙해 보이는 모범생이 욕으로 받아쳤으니 그 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우리 반의 센 친구 한 명이 그만하라며 그 아이를 막았다. 수업 종이 울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음 해 같은 반이 된 그 친구는 겉모습만 세 보이지만 허당 매력이 있는 귀여운 친구였다.


욕과 담배와 술과 연애.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10대 후반의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왠지 교실에서 조금 더 당당해졌다.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세 보이는 아이들(일진 또는 노는 무리)과 잘 지내면 그 외의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거다. 실장은 나였지만 실세는 역시 따로 있었다. "야 조용히 좀 해라"라고 한마디 낮게 말하면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지는 카리스마 있는 친구가 다행히도 나를 좋아했다. 자기도 이제 공부 좀 열심히 해보겠다며 내 짝꿍이 되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모의고사가 끝나면 시험지를 맞춰보기도 했다. 짝꿍을 한 번씩 바꾸기도 했는데 중고등학교의 경우 초등에 비해 생활에 미치는 담임교사의 영향력이 더욱더 미미했기에 짝을 바꾸는 사소한 일 따위는 '니들이 알아서 해'식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카리스마 있는 친구는 "야, oo(내 이름)이 옆자리는 나다"라고 말하며 그해 거의 만년짝꿍이 되었고 나는 좋은 성적+카리스마 있는 짝꿍 빽(딱히 나를 위해 해 준건 없지만)으로 안전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진이나 노는 무리라고 해서 남을 항상 괴롭히는 건 아니기에 적어도 우리 학교는, 심성은 착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활기차게 그리고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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