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순응할 것인가? 바꿀 것인가?

feat. 이기적인 소시민

by 무지개물고기

나는 이기적 소시민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바꾸는 대신 순응하기를 선택했다. 학벌주의, 외모지상주의, 교실의 카스트 제도, 엄마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맞서는 대신 나만의 방식으로 순응하거나 포기했다. 내 동생은 달랐다.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편에 서주었고, 육탄전이 되더라도 엄마의 부당한 공격에 맞섰다. 나는 그럴만한 용기와 배짱이 없었다. 세상엔 내가 노력해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이기적 효율성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교실 안에서 약자의 편에 서지 못했다. 심한 괴롭힘은 아니었을지라도 나는 어디까지나 무관심한 방관자였다.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건 오로지 강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강자도 아니었기에 내 행동을 합리화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엄마의 1절, 2절, 3절로 이어지는 쌍욕을 들을 때는 그 분노의 태풍이 한차레 지날 때까지 귀를 막고 그 시간을 버티거나 귀마저도 닫을 수 없을 때는 머릿속으로 무한 상상을 했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폭력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분노에 휩싸여 무슨 짓을 할까 봐 걱정하며 그냥 그 순간을 견뎠다. 누군가로 인해 내 인생이 망가지는 건 원치 않았고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멋진 삶을 살 거니까.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서울로 탈출(?)했다. 그렇다고 보통 엄마들처럼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품을 내어준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친구 말로는 원래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쏟아지는 가정 내 아동학대 기사들을 보면 세상에 모자지간이라도 당연한 건 절대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욕을 하면 욕을 받고, 때리면 맞았다. 그게 엄마일지라도. 세상일지라도. 어린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힘이 없는 자의 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의 기준은 변덕스러운 엄마와 비교하면 오히려 단순하게 보였다. 나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타고난 미인이나 영재도 아니었고, 예체능적인 끼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 조건들은 내가 건들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학창 시절에는 그 흔한 노래방한번 가지 않고 집-학교-독서실-학원코스를 쳇바퀴처럼 돌며 공부를 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 외모 역시 큰 자산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나는 '주관적 아름다움', '내면의 아름다움'을 운운하기보다 나답게 세상의 '미'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애썼다. 수능을 치고 쌍꺼풀 수술을 했고 매일 줄넘기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나는 고심해서 고른 옷을 입고 부기 덜 빠진 눈을 하고 상을 받으러 단상 위에 올랐고, 교문 앞에는 교대합격으로 플래카드에 이름이 걸렸다. 사법고시에 합격했거나 의대에 붙은 건 아니었지만 지방 광역시의 예체능 전공자 많은 그저 그런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썩 괜찮은 결과물이었다.


누군가는 비난할 수도 있겠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거나 세상의 기준에나 부합하려고 애쓰는 소시민적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비겁하고 우스워보일 수도 있겠다. 다시금 나는 용감하지도, 배짱도 없는, 그저 나를 보호하고 가면을 씌우는 일에 익숙한 이기적 효율주의자라는 걸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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