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너 이러려고 공부했니?

by 무지개물고기

너 이러려고 공부한 거냐?

졸면 깨우고 내가 다니던 수학학원도 따라 등록했다 버거워 그만둔 고등시절 내 베프의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 전교 1등‘과 H양의 친한 조합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내 친구는 고1까지 성악을 전공하며 지역대회에서 1등을 사수할 만큼 실력이 우수했지만 2학년이 되어 전공으로 이어가는 것을 그만두었고, 조막만 한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귀엽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 2학년때는 서울에 아이돌 오디션 카메라테스트까지 합격할 정도로 춤도 잘 추고 사진빨도 잘 받는, 패션마저 지금 생각해도 촌스럽지 않은 성숙한 스타일인 ’인싸‘친구였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 전교 1등‘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어린 시선, 친구들 사이에선 쟤네가 왜 친할까? 의아해하는 시선이었다.


XX교대에 입학하고 태권도 동아리를 들었는데 동아리 활동, 그러니까 늦은 오후에서 밤,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에 집중하고 정작 강의시간엔 고3처럼 꾸벅꾸벅 졸고, 주말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기본 낮 1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며 새내기 시절이 지나서는 바야흐로 클럽과 나이트를 전전하며 아침을 맞이하던 나에게 친구가 했던 말이다. 무슨 한풀이하듯 먹고, 놀고, 즐기는 나에게 “공부”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것을, 샌님 같았던 나도 방탕할 줄 안다는 것을 친구는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번외로 내 친구는 서울예전에 다니다 나의 모습을 보고(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다소 감화되어 운동복만 입고 편입을 열심히 준비하더니 단국대에 편입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잡지가 있었는데 바로 ’ 좋은 생각‘이었다. 그 잡지는 매 달 구매하여 좋은 문구나 글이 있으면 옮겨 적어보기도 하고, 아직 말랑말랑했던 감성을 가졌던 때라 사연을 읽고 감화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아마 같은 사연을 지금 읽는다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세상의 불행과 시련들에 대해 무디어졌는지 오히려 더 따뜻해지기보다는 차가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때론 부끄럽고 안타깝다.


명언이나 그럴듯한 문구도 많이 옮겨 적었는데 그 와중에 입시생 시절 나의 모토가 되어준 명언이 있다. “진인사 대천명”이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이 말은 이상하게 무조건 힘을 내라는 말보다 편안함을 주었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만큼이면 됐어. 나머지는 너의 관할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과학자라거나 대통령 등의 허무맹랑한 꿈을 꿔본 적도 없지만 정말 나는 그야말로 답 없는 모범생처럼 막연히 최고치의 성적을 내고 가능한 학교, 학과에서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고등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연극 동아리에 들어갔고, 방탕한 대학 시절 중에도 굳이 영어 회화 스터디를 찾아가고, 임용 후에도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영어뮤지컬 수업을 듣고 무대에 오르고, 육아휴직 중에도 번역공부를 했다.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거나 교대 특성상 텝스, 토플, 토익공부를 대학교 다니는 중에 하지는 않았지만(중학교 시절 텝스, 토익시험을 치른 게 전부다.) 대학 학과도 영어교육과와 교대 중 선택을 고민할 만큼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학교에서 담임을 안 할 때는 영어교과를 주로 맡아서 한다.


요즘 엄마표 영어로 외국에 살다오지도 않은 본인의 자녀들을 거의 원어민 발음으로 발화하고, 읽고 쓸 수 있도록 이끄는 인플루언서 “맘”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요새는 유튜브와 SNS등을 통해 타인, 특히 각 분야에서 유능하고 뛰어난 타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살면 살수록 내가 가진 재능은 한없이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너무 많은 타인들을 담 너머로 넘볼 일이 많다는 게 대다수 현대인의 상대적 ’ 결핍‘의 시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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