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피소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가 처음으로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포스터를 정성껏 꾸미고 연설문을 몇 번이나 연습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난 후 걸려온 아이의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엄마, 나는 회장이 될 수 없나 봐. 표를 하나도 못 받았어.."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당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표도 못 받았을 때 아이들 앞에서 아이가 얼마나 민망했을까, 상처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남들 모르게 연설문을 준비하고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갔던 날이 있다. 선생님이 전년도 성적(수우미양가 시절) 순으로 후보를 딱 잘라 칠판에 적으셨는데 그곳엔 내 이름이 없었다. 가방 안에서 꺼내지 못한 연설문과 함께 나만 아는 그 민망함과 찔끔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참느라 애썼던 그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적이 좋아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은 그날 이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다음 해에는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알고 있다.
좌절도, 실패도, 수치심도 성장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의 허들 같은 거라는 걸.
하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또 새롭게 알겠다.
자식의 실패와 좌절을, 그게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지켜보는 것 또한 엄마로서 넘어야 할 감정의 허들이란 걸.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겪을 숱한 실패와 좌절, 상처를 엄마가 막아줄 수는 없다.
그 숱한 감정의 허들을 넘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등을 토닥여주고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 거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