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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Jan 02. 2024

씹는 존재

일상 에세이

풍선껌을 불 줄 아는 첫째가 풍선껌을 불 줄 모르는 

둘째에게 말했다.

"풍선껌도 못 부는 주제에"

그러자 둘째는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부는 존재가 아니라 씹는 존재야"


피식 웃음이 났다. 

고작 껌을 '씹고' 풍선처럼 '부는'일의 가벼움에 걸맞지 않은 '존재'의 어울림이라니.


나는 어떤 존재인가

보통은 심오한 질문이다.

그 대답을 하는데 평생을 쓰기도 하는데

순간 존재라는 단어가 가볍고 경쾌해졌다. 


머릿속으로 나의 모든 행위에 '존재'라는 단어를 붙여보았다.

나는 먹는 존재, 자는 존재, 씹는 존재, 감상하는 존재, 

쓰는 존재, 읽는 존재.....

존재를 반복하다 보면 

내 존재가 정말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희미했던 글자들이 열을 맞추고 볼드체가 되듯.


어떤 날은 아직 배우지 않은 점자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뜻을 짐작해 보는 맹인의 자세로 하루를 보낸다. 

모를 것이 분명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그럴 리가 없는 일들을 가정하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쁠 때

볼을 꼬집어보듯이

나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면

'존재'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 본다.


걸어가는 존재,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존재, 

웃는 존재, 우는 존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옷을 믹스매치하듯 

시인의 마음으로 

다른 무게와 색채를 가진 단어를 믹스매치하는 법을 배워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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