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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Oct 14. 2023

작가와 고양이의 유대

작가와 소수자


'우리는 왜, 왜 동물을 이렇게 사랑할까?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작가(예술가)들은 반려동물 키우는 경우가 참 많다. 특히 작가와 고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랄까..., 고양이는 회화나 조각, 현대에 들어서는 일러스트, 만화의 소재로 일 순위일 정도이다. 주인공으로 고양이가 나오는 동화나 그림책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나만 없어 고양이'신드롬 세대이다. 물론 이 블로그에도 내 반려묘 지분이 반이상(?)은 될 것이다. 수없이 난 이 경쟁구도에(?) 한계를 느꼈다. 열심히 2~3시간 쓴 내 글 한편보다, 내 고양이 깜찍한 사진 한 장이 조회 수가 10배~20배 이상 난다는 것을...., 그야말로 고양이는 대스타이다 랜선에서.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렇게 랜선에서 인기가 대폭발인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애묘인들이 만나는 곳은, 이상하게 음지화(?)된 곳에서 은밀하게 만나고 활동하는 것이었다. 반려견모임은 지나가다가도 '아 반려견 동호회'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양지에서 오전, 낮시간에 활보한다. 장소들은 널찍한 운동장을 낀 곳이나 산책하기 좋은 산책로, 대형 애견 카페(야외)등이다. 야외에서 걷거나 산책로에서 운동하길 좋아하는 나는 이들은 수시로 본다.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 서로의 애견들을 자랑스럽게 동반하고 서로 짖고 까부는 걸 보며 주인들도 '까르르르'숨이 넘어가게 웃는다.(한 손엔 리그줄, 다른 손엔 배변봉투를 쥐어들고) 그런데, 반려묘 모임은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다.

애초에 반려묘들은 밝은 데서 모일 수가 없는 구조이며, 기껏해야 챗방에서 자신의 냥이들 사진 자랑질과 푸념으로 끝난다.


난 여러 차례 다른 장소에서 고양이 애호가들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주로 길냥이들을 구조하거나 몰래 사료를 주고 도망가듯이 가는 모양새였다. 환한 대낮은커녕, 어둡고 먼지 풀풀 나는 뒷골목에서 한결같이 마주치곤 했다. 요새는 고양이가 대세라는데 좀 달라졌을까 했더니, 몇 주 전에 매일 가는 산책길에서 역시 저녁 8~9시쯤,  한 아주머니가 산책로 초입구에서 누구를 애타게 부르신다. 한 손에는 사료봉투와 참치캔, 물병을 들고선, 잠시 뒤에 풀숲에 숨어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나온다.

" 아이고 며칠 만에 보네,,,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걱정 어린 말투로 하얀색 조그마한 길냥이 녀석을 쓰다듬으셨다. 하지만 이 쓰다듬음은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며, 걱정 어린 느낌으로 금방 바뀌었다. 사람들을 피해서 줘야 할 것 같은 느낌..., 누군가 항의하거나 고양이를 내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같은 게 뒤섞인 눈빛이었다.(왜인지는 너무나 잘 알겠지만)


sns를 봐도 작가, 화가, 일러스트레이터등 창작분야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반려묘사진을 많이 올리는 걸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파"는 랜선에서 더 흔하며, 자신들의 팬심을 각종 너튜브채널 구독, 조아요로 표현하며, 고양이들의 순간포착 짤이나 유머짤, 각종 고양이 사진이나 인**툰을 구독한다. 특히 길냥이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들엔, 길고양이들이 자신들의 좋아요 한 표로 좀 더 오래, 잘 살아주길 바라는 그런 애정 어린 걱정이 담긴 것이다. 그런 마음은 특별히, 길냥이 구조가들의 사진이나 너튜브채널에 집중 조아요나 댓글 응원들에서 표현이 더 많이 보인다.


"(길)고양이파"들은 소수자의 마음과 비슷하며, 어디론가 밀려날까 걱정하며 그들이 사랑하는 생명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수자라는 마음, 연대하고자 하고 소수자의 한종인 "길냥이"사연들에 특히 공감하고, 약한 생명체를 돕고자 한다. 그렇다 사실, 대세인 건 예쁜 품종들 소수의 반려묘들이며, 각종 일러스트나 책의 소재인 고양이들은 적당히 예쁜, 애교 있는 몸짓의 사랑스럽고 도도함으로 대표 지어진 이미지이며, 그런 이들은 랜선 이모들에게, 조아요를 필사적으로 받을 필요가 없는 애들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개체들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



태어나길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들은 뒷골목에서 차 범퍼 뒤편이나 풀숲에 숨어있는 것이 고작인, 고양이도 철저히 그 삶은 양극화되어있다는 것을... 그래서 소수에게, 모든 생명체를 고르게 애정하고자 하는 작가들이나 창작자들은 이런 뒷골목의 좀 애달픈 운명을 가진 길냥이들에게 감정을 투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만큼이나'뒷방'으로 생존이 밀려나지 않길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약간 아픈, '유대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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