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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Feb 15. 2017

#15 생계 혹은 사는 것처럼 사는 일

소득의 반을 모으지 못하는 데에 대한 변명

엄마는 첫 월급을 받은 동생을 나무랐다. 저축할 돈을 먼저 남겨두고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테크 책 제1법칙처럼 나오는 그것을 왜 우리는 지킬 수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침에 인터넷서핑을 하다 다음 스토리 펀딩 '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라는 연재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후원금으로 월 135만원 기본소득을 받은 청년의 사례가 가까운 친구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서른, 주변에는 공시생, 취준생, 외국에 있는 친구, 곧 일을 관둘 친구 등 '기본소득'이 필요해보이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은 걸 보니 나도 아직까지는 청년인가보다.

어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기 시작했고 그저께는 임경선 작가의 '자유로울 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느낀점은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생계'가 가장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관문이라는 것. 글로 먹고 살기는 현직 작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 작가라는 꿈과 생계가 내겐 큰 고민이며 앞으로 거쳐가야할 결혼, 출산, 육아라는 과업도 해내야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고 있나. 생계 이상으로 얼마만큼 원하는 생활을 하고 있을까.

몇 개월 전, 내 남자친구는 자진해서 계약직이 되었다. 다가오는 9월이면 정규직이 될 것을 기대하는 계약직 신세. 서울에 있는 그가 내가 사는 지방으로 온 50%의 이유는 나였다. 장거리 연애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주 만나고 싶어 했고 일주일에 두 번을 보았다. 솔직히는 그 생활에 조용히 지쳐갔으며 미래 결혼생활을 서울에서 하기에는 겁이 났다. 서울에서 취업할 것이 겁나는 게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어려울 게 뻔했으니까. 서울 본가에서 멀쩡히 직장을 다니던 그도 배팅을 해보기로 하고 지방으로 왔다. 한 일 년,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러나 이곳으로 오고 그는 불안감이 심해졌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정규직이나 계약직이나 업무의 강도는 다르지 않았고 미래는 보장하지 않으면서 일은 더 많으니 심리적으로 더 고단하게 느끼고 있다. 

내 막내 동생은 취업한 지 한 달이 됐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3개월간은 월급의 80% 정도를 받는다. 그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지난 설날에는 다른 직원들이 현금으로 일명 명절 떡값을 받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참치선물세트라도 말이다. 생각보다 회사는 잔업수당 같은 것을 챙겨주지 않는 곳이었고, 토요일도 일을 해야 했으며 삶의 질은 떨어졌다. 과연 동생은 버틸 수 있을까. 

나와 여동생은 집에서 가까운 직장에 다니고 있다. 여동생은 공무원이고, 나는 일종의 지역신문 기자. 내가 동생이 하는 일을 보면 못하겠다 싶고 동생도 나를 보면 그럴 것이다. 말이 좋아 공무원이지 지금 하는 일은 감정노동 서비스직과 다름없다. 막무가내 악성 민원인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래도 동생이 부러울 때가 있다.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과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여유. 시간별로 챙겨주는 초과수당과 수평적인 분위기 같은 것.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불만족하는 생활을 무마하기 위해 미래에 목숨을 건다. 변화를 위해선 감내해야하니까. 나도 한 때는 돈을 모으려고 어지간히 애썼다. 소비는 죄책감을 부르는 행위였고, 저축만이 희망이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는 주말알바를 하던 곳에서 시급 5천원을 받으며 평일에도 일을 했다. 하루 5시간 정도. 하루하루 스케줄이 빽빽했고, 주어진 일을 다 했어도 수입은 한 달에 9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토익 학원비와 용돈 등을 쓰고 나니 정작 모은 돈이 3백만 원 정도. 다른 것은 아꼈어도 한창 책을 많이 사던 시기였고 이래저래 돈 들 곳이 많았다. 나름 최선을 다해 모은 돈으로 원하던 것(해외로 나가는)을 하기에는 금액이 부족했고 현실적으로도 당장에 필요한 곳들이 있어 꿈처럼 여기던 것은 접기로 하고 다양한 시험 준비를 했다. 그 3백만 원은 인터넷 강의비로 다 나갔다. 시험준비로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고 싶은 공상가였으니까.

취직을 늦게 했다. 엄마는 내게 많은 액수를 저축하게 했다. 차도 사야했고, 보험료도 내야했는데 영 벅차서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생활이 대학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결혼비용을 모아야한다는데, 결혼을 몇 년 후로 미루더라도 대학 때 못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 여행, 취미활동, 대인관계유지, 꿈을 위한 실천? 등이었다. 그렇게 전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보았다. 현재만을 생각하며 소비하는 것은 꽤 달콤했다. 원하는 것을 미루지 않는 것도.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이제야 살만하게, 그러니까 행복의 권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저축할 돈을 먼저 정해두고 나머지를 써야한다는 그 당연한 법칙을 깨야만 생활이 여유로워지는 나를 어찌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생활력은 없는가보다.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모아 티끌이라는 말이 더 와닿으니. 그러나 생계 이상으로 사는 것처럼 살고, 꿈을 꾸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이 문제 아닐까. 비관론인지 허무주의인지, 책임회피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꿈과 생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다.(답없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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