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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Mar 21. 2017

#16 자존감을 빼앗는 상황에서 선택하기

-일… 관둘까 말까


나는 포기가 어렵다. 사람도, 일도. 잘 해낼 자신도 없으면서 포기하지 못한다. 포기 후 감당할 현실이 두렵고, 혹여 후회할 나 자신이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관둘지 말지에 대해 나름의 단순한 기준은 선택인지, 포기인지를 가리는 것.

대안이 있다면 선택. 싫어서 떠난다면 포기.

때로는 기대와는 다른 상황들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일을 하다보면 내 생각 같지 않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이미 상처에 익숙해졌지만 더욱 상처가 아프게 나는 날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존감만은 지켜내겠다고 마음먹었던 각오가 쉽게 무너져 버린다. 참아왔던 눈물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서 울컥 쏟아진다.

그러나, 포기하기는 싫다.

오기로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성숙해지고 강해지지 않을까.

원래는 이런 상황에서 도망가는 쪽이었다. 맘껏 긴장하다 숨어버리거나 우울의 늪에 빠진다. 그런 성향 때문에 한 때 끝맺음을 깔끔하게 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마음에 모래알처럼 남았다. 흐지부지 끝난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 취업에 앞길을 막은 학과 성적 등- 오랫동안 짊어지고 감당해야했던 짐.

그 때 느낀 자책, 후회가 지금 포기를 어렵게 한다. 관두면 끝날 일인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문제. 비록 힘든 상태를 지속할 지라도- 전처럼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고, 변덕이 심하고, '내가 나 같지 않은 상태'이더라도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야하지 않을까.

한바탕 울고 난 후에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너무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관점에만 빠져 우울한 감정에서 허우적대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그러고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 성숙해진 내가 지금의 나를 되돌아볼 때 안쓰럽게 느낄 게 뻔하니까.

결국 후회하는 것은 조금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조금 더 즐기지 못한 것뿐.

지나고 보니 쓸모없는 시간은 없더라. 몇 달을 집에서 미드만 보는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도 해봤고, 일주일에 5~6일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기며 젊음을 소모해봤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잠을 잘 수 없고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지옥 같았던 시간도 견뎌냈다. 이런 저런 시절을 보내고 더디지만 조금은 나아진 지금에 다다랐는데 현재 이 시간들을 던져버리고 싶다고 해서, 그 마음을 표출하고 폭발시킨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 자리에 앉아있지만 내 자아는 저만치 먼 구석에 웅크려 모든 것을 자신 없어하고 쉽게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자아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은 있으니까. 전자보다는 후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겠지.

포기가 아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마주하기, 움직이기, 이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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