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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Apr 28. 2017

#22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사람으로 얻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된다

한창 어둠이 드리웠던 날들이 있었다. 생각을 버리고자 어두운 저녁에 한없이 걷곤 했다. 걸으면서 가끔 눈물이 났다. 마치 혼자가 되어버린 듯한 고독에 나를 가두고, 연락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지금의 나는 당시 괴로웠던 문제를 흐릿하게나마 기억할 뿐이다. 이미 오래 전 이야기. 그래도 우울할 때는 더러 있다. 이를테면 한 달 전만 해도 일 때문에 무척 답답하고 힘들었다. 원래는 나름의 내공으로 우울함을 금세 회복하는데 이번에는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가는 관문인지 한참이나 지속됐다. 오랜만에 들이친 어둠에 어쩔 줄 모르다 우울한 마음도 바닥을 찍고 나니 다시 올라갈 의지가 솟아났다. 그리고 점차 괜찮아졌다. 

현재 사는 모양새를 관조해본다면, 삶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를 몇 가지 찾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SNS를 대하는 나의 태도. 유행을 따라가며 소소하게 즐겼던 SNS는 사실 부정적인 성질도 꽤 갖고 있었다. 앞서 말했던 암흑기 시절, 친했던 이들이 자기들끼리만 잦은 모임을 갖는 것을 보며 상실감이 몰아쳐 더욱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SNS 관련 어플을 지우고 탈퇴하며 '더 이상 발 들이지 않아야지.'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친구와 동창들 이야기가 나와 한 명 한 명의 SNS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1년 전 인스타그램을 가입했다) 나한테 독약 같던 그 행위는 이번엔 그저 맹물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어떻건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망각하는 재주를 갖게 된 내가 아마 한 번 보고 잊어버릴 근황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 내게 비중있던 그 누구의 소식도 이제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들었던 전 남친의 결혼 소식 또한 마치 무명 연예인의 결혼 기사처럼 아무 느낌이 없었으니까. 역시 자기 삶에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만큼 다른 사람의 삶이 눈에 들어오지 않나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내게는 몇몇 그리운 사람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어긋나고 연락이 끊긴 몇 명의 친구- 찹쌀떡처럼 잘 맞고 가까웠기 때문에 빈자리가 아쉬웠으리라. 물론, 관계가 변하는 발단이 된 사건이나 과정들은 힘이 들었지만 미련은 남았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새 없어져 더 이상 아쉽지 않았고, 잊어도 되는 과거가 되었다.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들로 ‘마음 근육’이 많이 자랐음을 확인한다. ‘마음 근육’이란 회복탄력성을 뜻하는데, 스스로 힘든 것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마음 근육이라는 것이 많이 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회복 되었다. 흔한 이야기지만 사람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사람으로 치료됐고,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도 생겼다. 앞으로도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고 그들에 대한 신뢰나 믿음도 견고하다. 어차피 깨질 관계는 무릇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었다. 허울만 좋던 시절을 지나 암흑기를 보내고 얻은 현재가 꽤 만족스럽다. “행복하다”고 직접 말할 위인은 되지 못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생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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