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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Aug 31. 2017

#27 상처를 지우는 일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돌아보고, 다른 시선으로

어린 시절 기억은 살아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어쩌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모든 힘든 일에 안 좋았던 부분만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난 초등학교 때를 묻어두고 싶은 상처로 여겼다. 내 기억의 조각들 중 몇 개는 당시 스스로를 외롭고 쓸쓸했던 여린 아이로 기억한다. 쉽게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부모님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주눅든 아이. 그러다보니 나는 기억 속 어린 나를 마냥 동정하고 슬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나 타고난 본성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어린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내게도 고쳐야할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르시즘이 있고, 자기중심적이니까. 객관적인 눈을 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내 5~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분을 오늘 일 때문에 갔던 학교에서 만났다. 내게 "자신감이 없어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성적 통지서에 "과묵하다"라는 말을 남겼던 분. 너무 밝고 당당하신 모습이 소심한 나를 오히려 작게 느껴지게 했던 선생님. 그랬던 선생님이 내 알은 체에 이름을 부르며 "예뻐졌다"고, "글쓰기를 잘 하더니 관련된 일을 하고 있네"라는 말을 건넸다. 묘하게 지난 상처가 치료되는 순간이었다. '칭찬이 고팠을 때는 쓴소리만 하시더니... 그래도 내가 글쓰기를 잘 했다고 해주시고 이름과 얼굴까지 기억해주시고.' 투명인간 같던 어릴적 내 모습에 색이 더해진다. 

상처를 지워가는 건 불필요한 감정적 에너지 소모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특히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가족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모님 사이가 몇 년째 좋지 않은 내 친구의 얼굴에는 조금의 그늘이 있다. 반면 가족과 사이가 좋은 사람들은 밝은 얼굴을 띄고 있는 것 같다. 생채기 났던 관계도 회복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나는 속에 쌓인 게 많은 아이였고 숱한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의도치 않게 깨졌다. 스스로 변하지 전까지는.

정말 바닥을 찍었다 싶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가 시작됐다.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사람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부모님과의 갈등도 잘 해결한다. 적절한 자기 표현과 치고 빠지기 요령. 여전히 착하기만 딸은 아니지만 서로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갈등을 다루고 평소에는 친구처럼 엄마와 지내고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혼자만이 가졌던 작은 원망까지 해결되니 이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가 또 있을까 싶다.

아직까지도 흐지부지 끝냈던 사람들이 해결될 문제로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그래도 조금 자신이 생긴다. 앞으로는 더욱 홀가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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