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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Sep 19. 2016

#03 결혼은 현실

-사랑이라는 동기, 경제적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현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아직 내가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결혼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느껴지는 계절이 지나고 거센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저절로 나이가 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 결혼을 계획하려고 한다.

요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주제는 단연 '결혼'이다. 결혼을 하려면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결혼 준비는 보통 6개월을 잡고 진행하는 반면 그 시간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르는 시간과는 다르다. 

연수원 동기로 만나 각각 다른 지역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내 친구 M과 그녀의 남자 친구는 내년 10월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그들은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수입이나 안정성에서는 좋은 조건을 갖췄는데 문제는 근무하거나 사는 지역이 다르므로 합칠 일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어디에서, 신혼집은 어느 지역에 구할지 답을 못 내리고 있다. 결혼에 이은 출산과 육아도 생각해야 하므로 무언가 결정 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결혼 준비는 서로 혼담이 오가고 상견례, 예식날짜 결정, 예식장 예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정하고 보통 결혼식 2~3개월 전에는 웨딩촬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예단, 예물, 혼수 구매 및 신혼여행 준비를 마치고 청첩장을 돌리고 나면 비로소 결혼식이 코앞이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 하나하나의 단계는 여러 옵션들 사이에서 선택을 필요로 한다. 결혼 당사자 간 바라는 것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잘 풀지 못한 갈등은 화근이 되기도 한다. 양가 부모님 간 교류에서도 자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로의 부모님이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말과 행동을 잘 해야 한다.

결혼을 하는 동기가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에 근거하는 데 반해 결혼 준비는 경제적인 현실이 바탕이 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모순이다. 사랑의 완성은 결코 결혼이 아니고, 결혼의 현실적인 의미는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 독립이 새로운 귀속을 뜻할 수도 있지만. 결혼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가정을 이루고 책임지는 새 출발이다. 배우자와 미래의 자녀를 책임지는 데는 경제적인 능력이 필요하니 결혼은 경제적인 밑바탕이 절실하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공상을 즐겼던 내가 경제적인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경제적 어려움이 부모님의 불행에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게 되면서부터다. 나는 종종 우리 삼 남매의 어린 시절 그늘이 드리웠던 엄마의 어두운 얼굴이 생각나곤 한다. IMF로 나라 경제가 직격 타를 맞기 1년 전 아빠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를 했고 엄마가 가장이 되어 생업전선에 나섰던 적이 있다. 그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엄마는 어린 자식의 발랄한 재롱과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생활비가 없어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가슴엔 한이 맺혔을 게다. 당시 무엇 모르는 동생들은 천진난만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엄마의 그런 불행을 공감했다. 더불어 나도 조용하고 조금은 주눅 들게 되었다. 꼭 그때 불행할 수밖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궁핍은 사람을 예민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만들고 사랑하는 사이에도 불만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큰 요인이 된다. 결국 현실과 사람 모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불행한 감정이 든다.

우리 윗집에는 네다섯 살 된 남자 세 쌍둥이를 둔 젊은 부부가 산다. 어느 날 윗집 젊은 여자가 명절 때 선물을 가지고 우리 집 벨을 눌렀는데, 나가보니 아이들이 어려 본의 아니게 층간소음 피해를 드릴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후 우리 가족은 가끔 윗집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나도 때론 정겹게 느끼기까지 하며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윗집에서 내는 소음 중 기분 나쁜 소리는 따로 있다. 바로 부부싸움 소리. 아이들이 크니 이제는 전처럼 물건을 던지거나 내려놓는 묵직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언성이 높아질 때가 종종 있다. 여자는 악을 쓰고 남자는 여자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욱하며 순간 화를 낸다. 그 사람들이 본래 폭력적인 사람들이라서 그런 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깨에 진 무게가 무거워 상대에게 불만이 쌓이다 보니 갈등이 증폭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구쟁이 남자아이 셋 육아를 맡은 아내,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남편 모두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 안에서 힘들어하고 있지 않을까. TV에 나오는 부유한 연예인 쌍둥이 가정들은 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주변 현실에서는 어디 그러한가. 

사랑을 하면 행복하지만 결혼을 생각하면 작아진다. 아이를 기를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 하나를 대학 졸업시킬 때까지 2억 6천만 원 가까이 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까마득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한 번 해보자 하는 깡이다. 억척스럽더라도 아끼고, 박봉인 직장이나마 끈질기게 다니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결혼을 언제쯤 할지 생각하다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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