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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Sep 22. 2016

#04 사는 건 지치는 일

-의지박약 루저가 산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사는 것이 꽤 지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억지로 목표의식을 불어넣는 것 같았고 마음은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인지, 경쟁에 익숙지 못한 것인지, 혹은 내가 자신감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때는 스스로가 루저인가 싶다.

어릴 때 나는 조용하고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종합학원에 다녔고 그것이 중학교 2학년까지 이어졌다. 살던 동네와 조금 멀어 같은 학교 아이들이 다니지 않는 학원이었다. 그럼에도 다녔던 이유는 아빠 친구가 원장으로 있어 학원비를 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집과 먼 학교를 배정받아 봉고차를 타고 다녔는데,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가기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급히 학원 버스 시간을 맞추고 기다릴 때는 버스가 먼저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특히 추운 겨울에 학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한기가 써늘해 마음까지 외로웠다. 학원 친구들과는 금세 친해졌지만 그 나잇대 아이들은 쉽게 학원을 옮겨 친했던 친구들이 다 나가고 혼자가 되기도 했다. 시험 대비를 할 때는 성적별이 아닌 학교별로 반을 나누는 데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그 학원을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였으므로 꼽사리를 껴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 중학교 아이들과 한 반이 돼 쉬는 시간에도 오롯이 혼자 조용히 앉아있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혼자만의 방황을 했는데 아예 내신을 포기하다시피 한다거나, 속으로 자퇴를 고민한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방황과 동반된 반항의 대상은 부모님이었고, 나 때문에 집안이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고2 겨울에 꿈이 생겨 목표를 잡고 공부를 했더니 모의고사 성적이 올라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수능을 봤는데,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무난한 성적이 나와 원하는 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걱정됐기 때문인지 어쩐지 풀이 죽어 부모님 말씀대로 지방국립대를 가군, 나군에 쓰고 다군에 지방사립대를 지원했다. 그렇게 대학은 어쩌다보니 장학금까지 받고 지방국립대를 입학했다.

이후의 생활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시간의 연속이었으며 힘든 시간이 6~7년 정도 이어졌다. 취업을 할 때까지 나는 그다지 떳떳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기본’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시험을 망쳤어”라고 말하더라도 중간은 가는 친구들, “시험 공부 하나도 안했어”라고 말해도 점수가 어느 정도 나오는 사람들. 나는 그런 부류가 되지 못했다. 목표의식은 내 안에서 가끔 일어나는 것이었고, 일상에서는 이런저런 의지가 별로 없었다. 남들처럼 으레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일상을 채우는 것은 무엇보다 싫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돈을 모으고 일에 내 시간을 쏟아붓는 일이 힘들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 하거나 새로운 것에 관심 갖고 파고드는 것이 그나마 사는 데 활력을 주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마음의 여유를 위해서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여유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일에 헌신하는 일상의 무게는 때로는 떨쳐버리고 싶다. 행복과 성취를 동시에 얻을 수는 없을까. 이렇게 불만투성이 소심한 속마음을 나열하다보면 스스로 불행을 부르게 된다. 사는 건 지치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쩌나. 욕심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그리고 너무 나의 철학을 주장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살아야 그나마 머릿속이 덜 시끄럽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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