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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Dec 13. 2017

#45 자꾸 편을 나누는 당신에게

-내가 언니와 절교한 이유

나는 엊그제 어떤 이와 이별했다. 가족도, 남자친구도 아닌 친구같이 지내던 언니와.

다시 관계를 이어갈 의지가 없으니 이제는 그 연을 끊기로 했다.  

여느 이별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이유를 대기는 어렵다. 작은 계기 덕분에 그동안 쌓여있던 것을 아울러 결정을 내리게 됐다.

나는 이 이별에서 과거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같은 복잡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엔 홀가분했고, 시간이 지나니 조금 아쉽고 슬픈 마음도 든다. 그래도 자칭 '이별전문가'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결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의지를 굳게 다진다.

2년 넘게 자주 왕래하던 길이 한순간 끊겼는데 이것은 남이 깊이 이해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우리 관계는 영어 모임을 통해 시작됐다. 경상도 말씨를 쓰고 끼가 많은 언니의 코믹함에 반한 나는 언니가 모임에, 또 이 도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좋았던 순간은 그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언니의 말과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를테면 같은 상황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통해 감정이 곧잘 상하는 언니의 심문 같은 질문들에 몇 번이고 대답해야 했다. 나의 행동에 기분 나빠 묻는 것은 아니고 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연락하는 언니의 특성상 어떤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물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언니가 기분 나빠하는 대상을 욕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대답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마치 지뢰밭길에서 지뢰를 피하는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느껴졌다. 욕을 하지 않을 뿐 그 질문들은 언니가 화를 내고 싶어 뱉는 매개체 같았다. 나의 대답이 그릇되다고 생각되거나 다시 해석될 때는 재차 물었고 나는 ‘선량한 시민’처럼 굴게 됐다. 훗날 나는 그것이 언니의 제 편 나누기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나는 언니에게 내 소신을 말하지는 못했다. 한 번은 함께 친한 동생에 대해 너무나 지나친 험담을 하는데 듣고만 있었다. 세상 그렇게 심한 욕은 들어본 적 없을 그 아이에게 결코 전달하지 못할 내용들. 그 언니는 또 편 나누기 작업을 하고 있었고 지뢰를 밟고 싶지 않은 나는 적당한 답변들을 골라했다.

평소 나답지 않게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 안에 쌓인 언니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때로는 별 이유 없는 화풀이를 당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당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짜증’이라고 순화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심리상태가 불안했던 언니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남에게 분출하는 ‘화풀이’였다.

‘사회에서 만난 사이 뭐가 중요하다고 계속 그렇게 지내냐’고 묻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자꾸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관계를 끊을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땐 내게 지나치게 했기 때문에. 그런데 때때로 다가와 살갑게 구는 언니의 장점,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훈훈한 장면을 위해 참았다.

관계의 지속성을 위해 계속 견디기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 사람의 패턴이 보이게 되었다. 언니는 만만한 사람에게는 더욱 혹독하게 구는 인물이라 나는 스스로를 강한 모습으로 위장했다. 언제든 할 말은 하고, 똑부러지게 구는 사람. 그래서 언니에게 이유 없이 당하지 않을 사람.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고 새로 영어 모임을 시작하면서 난 더욱 언니의 지독한 면들을 보았다.

특히 지난 주말 영어 모임에서 22살 되는 발표자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마자 잘못을 꼬집으며 한참을 설교했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진행을 해야 하는데 언니는 5분이고, 10분이고 그 아이를 질책했다. 어리숙한 그 남자아이는 자신의 준비가 부족해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십 수 번 사과했는데 그 비정상적인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다음날, 나는 그날 자리에 없던 리더의 안부전화에 그 이야기를 했고, 언니는 자신은 조언을 한 것뿐이라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내가 중간에 꼈다. 그리고 난 다시 언니에게 지뢰밭길 질문 미션을 받았고, 이번에는 그 지뢰를 밟았다. ‘빵’ 터졌고, 언니의 욕 문자에 난 답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별의 시점으로 정했다.

‘아, 참 외롭고 욕심 많은 사람. 스스로도 힘든 사람.’

더 이상 나는 언니와 ‘적당히’ 지내는 것조차 하고싶지 않았고, 소신을 내세우고 싶었기에 나의 결정에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

이번 일은 주체성과 자유, 소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주관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사고와 말을 제한하는 혹은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입체적인 사람의 캐릭터상 그 사람은 무조건 ‘악’은 아닐 것이고 내게 잘해준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상 그 관계를 소신껏 컨트롤할 수 없다면 떼어놓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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