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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Dec 27. 2017

#46 별 일 없이 산다

"별일없어."

누군가 근황을 묻는다면 쉽게 답할 말.

그러나 내 마음은 자꾸만 무언가가 드나들고 채워지고 뭉그러지기를 반복한다.

일이 한가해진 덕에 다양한 책을 읽고 있다. 적어도 책이라도 읽어야 글을 쓸 마음이 생긴다. 흥미를 끄는 소설을 발견하면 나도 단편이라도 한 번 써볼까 주저하다 아직은 덜 여문 나를 성찰한다. '그래, 아직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대안의 삶'에 관심있다. MBC스페셜 '시골에 가게를 차렸습니다' 편에 등장한 한 부부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버리고 제주의 작은 섬 우도에 책방을 차렸다. 성공과 행복을 함께 얻은 사례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만 추진력을 갖게 되기까지는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 속에는 그들과 같은 낭만을 품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유수진의 '부자언니 부자연습'과 같은 책을 본다. ‘아,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산다, 역시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하며 감탄한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책이지만 무언가를 오래도록 실행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최근에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냈다. 평온한 나날에 말썽을 일으키던 인간관계를 비웠고, 힘든 과거를 더 이상 우려먹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 빈 자리를 현재의 만족과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릿 속에 머무는 많은 것들의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돈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안정성과 불확실한 꿈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바라는 두 가지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모순된 상황이 겹쳤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챙긴다면 홀홀히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부모는 못 되더라도, 든든하고 단단한 부모이고 싶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안정성은 기본 요건이 될텐데 어느정도 여유를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다.

그때까지 나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지금 직장은 안정적이지 않고, 밥벌이는 지속해야 한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미래를 준비하며 불안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 작가의 말이 진리다.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일 중 하나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이유로 하는 것이라고. 그러면, 현재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그런 일. 탄탄한 가정을 위해 해야하는 일은 실은 별로인 일. 내가 그것을 참을 수 있을까. 과연 언제쯤 하고 싶은 일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까.

자꾸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마음의 우선순위를 알아내기 위해서. 이를테면, 돈이 없어서 쓰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그 덕분에 얼마 전 생긴 몫돈은 명품가방 구매가 아닌 정기예금 통장에 들어갔다. 진심으로 내가 그것을 바랐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안정된 삶과 꿈 사이에서 갈등 아닌 갈등을 한다. 그나마 과거보다는 꿈에 가까워진 기분이지만 더 나아가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삶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예비 신혼의 달달한 행복에 취하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뜨인다.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덜 채워진 영혼일 뿐이니까.

그래도 난 말할 수 있다. 그나마 별일 없는 지금이 좋다고. 그리고 균형을 잡아가는 중이라며 핑계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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