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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Oct 07. 2016

#07 친구의 존재

-나의 또다른 기록

나에겐 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으로 만났던 친구인데 안 지 10년이 넘었으니 꽤 오래된 친구다. 나는 사람을 좁고 깊게 사귀는 편이라 친구라는 존재가 특별한데 그 친구는 더욱이 그렇다. 복잡했던 나의 생각을 관심 갖고 읽어줬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우치고 표현하는데 도움을 줬던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함께 어울리던 무리에게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때 곁에서 날 지지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관계는 물리적 거리처럼
가까웠다 멀어지는 것을 반복했지만
내 자아와 가장 가까이 관계를 맺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그 친구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 친구, J는 무엇보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파악해줬다. 물론 그 바탕은 나를 봐온 기간과 내 말과 행동에서 근거한 것이었지만, 남들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하다고 느낄 때의 갈증을 해소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20대 초반에 나는 가족과 사이가 멀어져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 친구는 많은 역할을 해주며 내가 고립된 외로움에 빠지지 않게 해줬다. 나는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J에게 힘든 감정을 쏟아내기도 하고,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것, 평생에 있어 바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일기를 쓰듯 J를 통해 나의 기록을 새겼고,
J는 나의 현실과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알며
내가 흐트러질 때면 초심을 일깨워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정신적 지주였던 J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한참을 연락하지 않았다. 매우 가까웠던 관계가 안부만 주고받는 싱거운 사이가 되기는 싫어 사소한 연락을 꺼려했던 것도 있고 혹시나 내 연락이 피해를 줄까 망설였던 이유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는, J가 계속 수험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취업을 했고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며 주변에는 어울릴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내 짧은 친구리스트 중 언제나 상위에 랭크돼있던 J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올 가을이 찾아오면서 J가 생각났고 때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J가 다른 친한 친구와는 분명 연락하고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바람처럼 내가 J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J는 안 좋은 감정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말과 행동을 하는 데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듣는 것을 잘 하는 J는 잘 맞았지만, J가 수험생활을 하며 힘든 것을 이야기하고 의지하기엔 내가 적합한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막연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1년만일까. 어제 어색하게 J와 통화를 했는데 여전히 J와 이야기하는 것은 재밌었다. 찰떡같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듣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조금 창피한 내 모습도 잘 알고 있어 부담 없는 사람. J는 여전했다. 수험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까 걱정했던 나의 생각보다는 J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려해주는 따뜻한 친구였다.

어제 저녁 또 다른 친구와 2시간을 넘는 통화를 했다. 이제 막 안 지 1년이 되는 친구다. 호주에 있는 U와 전화하며 이야기한 내용 중 하나는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친구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고,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친구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하며 나는 재미있고, 유익하고, 오래가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에
순간의 즐거움 이상으로
책임감을 갖고
 나도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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