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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Oct 11. 2016

#08 정처없는 청춘

-방황하는 젊은이들 투성이

뚜렷이 자기가 나아가야할 길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장생활의 경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4년차 편집기자 L은 일을 그냥 관두고 내년에는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매일같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소리를 하던 L이 오늘만큼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보였다. 무모하고 막연한 생각이나마 내게 뱉어내는 것을 보면 이 지루한 삶에서 실낱같은 의지를 찾게 된 것이 기쁜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학창시절 내내 괜찮은 성적으로 무난히 살아오던 L이었다. 취업 후에는 꼬박꼬박 적금을 했다. 그렇지만 이곳 일은 너무 비전 없이 느껴지고 자신이 원하던 것을 풀어내기에는 현실이 팍팍했다. L 주변에는 은행이나 일반 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이 더욱 윤택하게 살고 있었다. 회사나 직장 상사는 L을 끌어주지 못했고 L은 이쪽 분야에서 더 나아갈지, 안정적인 업종으로 이직을 할지 고민하다 이제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게 돼버린 것이다. 외국이라니, 그러나 나는 L의 그런 의욕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조금씩 변화시켜보라고 덧붙였다.

나는 항상 이상과 현실에서 갈등한다. 현실을 생각할 때 나는 매우 초라하다. 냉철한 판단을 더한 현실은 하향산업의 저소득 직장인일 뿐이고, 그에 따라 자기계발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나는 먹고 사는 문제와 관계없는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옳은 것일까 하는 가치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기도 하고 사실은 현재에 만족하는 편이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있는 삶을 통해 사람을 만나 얻는 즐거움, 직장에서의 성취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추진력,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원만한 관계 등을 모두 이뤄내는 현재를 만족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 애매한 나의 직장이 내 원하는 모든 것을 적당히 충족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래가 두려워지곤 한다. 직장이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데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한창동안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실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나의 의식과 무의식이 업무 외 시간까지도 점령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모두 L같은 사람들 투성이다. 나도 그렇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 꿈을 이루고, 현실과 직장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일에 헌신하는 것이 견디기 버거울 때가 많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을 보며 느낀다. 얼마나 숨 쉴 틈 없이 사는지, 나와 가장 가까운 S는 이직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매일같이 야근을 한다.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렇게 살아도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을만한 경제적 보상이나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사회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을 이유로 우리가 잘못 살아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방황하는 청춘일 뿐이다. 답은 없지만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의지나 역량이 되지는 않는 청춘들... 실패를 감당할 용기가 없고 사회는 그 실패를 과정이라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딜레마에 나는 그저 적당히 현실에 끼어 맞춰 있고 언제나 다른 무언가를 갈구한다. 내가 원했던 것에 몰두할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리지만 잘 모르겠다. 그런 여유가 내게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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