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자연, 나를 찾게 한 여행

by Baumee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고립된 생활을 한 지가 벌써 세 달이 넘었다. 그 동안 본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임 두 세 개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삶의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관계와 소속감이 주는 풍족함의 부재를 혼자 끙끙 앓다 거의 반사적으로 여행 코스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강원도였고 그 중 강릉이었다. 때는 5월 중순 말. 전국에 비가 이따금씩 하루 걸러 또는 이삼일씩 내리던 때였다. 그러나 날씨가 나의 답답함과 고립감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본능을 막을 수 없었다. 일기 예보는 내가 여행을 계획한 날짜 2박 3일 중 이틀이 여행지에 비를 예고하고 있었다. 비가 무슨 관계랴! 내가 살아야겠는데. 강릉의 한 호텔을 찾아 2박을 예약했다. 강릉의 어느 곳을 가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단지 탁 트인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여행 당일 다행히 서울의 날씨는 구름이 조금 끼었을 뿐 맑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어려웠던 나는 동서울 터미널로 가서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릉으로 가는 우등 버스 안에서 서울을 벗어나 녹음의 짙기가 점점 더한 강원도로 향하는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나의 여행으로의 조심스런 한 발자국 한 발자욱을 떼었다. 차 안에 있었을 뿐인데도 차 창밖으로 보여지는 녹음이 짙어가는 강릉으로의 여정은 나를 옥죄고 있었던 무엇인가들이 조금씩 벗겨지는 듯 조금 마음의 위안과 따뜻함을 느꼈다. 강릉에 도착해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내려 지역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곳에 혼자 온 느낌. 두렵다기보다 그저 한발 한발 여행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터미널이 있는 마을은 온갖 답답함에 찌들어 있던 내게 낯선 차가운 느낌보다는 자연 품은 따뜻함을 주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으나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의 여정은 평범하면서도 녹색 짙은 마을의 면면을 보여주었는데 움츠러 있던 내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려 주었다. 호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자 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퍼붓기 시작했다. 다행히 숙소는 머지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재촉해 체크인을 하고 내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또다시 내가 혼자라는 고통이 엄습해왔다. 다시 혼자이구나. 또 다시 혼자이구나. 그러나 장소는 완전히 다른곳이었다. 나는 애써 생각을 다른 쪽으로 자리잡고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의 한면 곳곳이 들여다보이는 아담하고 쾌적한 방이었다. 따뜻한 느낌의 조명이 한결 내 마음을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주문진 시내가 비 사이로 펼쳐져 있었다. 바람도 세게 불었다. 나는 주춤했으나 곧 우산을 펴고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멀리 가지 않아 주문진 생선 시장을 발견해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은 비가오고 있어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차가운 비 사이로 보인 그곳은 을씬년스럽기까지 했다. 그 곳에서 한 생선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주문했다. 무료하게 앉아있던 여주인은 뒤뚱뒤뚱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손님이 없는 텅 빈 식당 안은 한쪽에서 틀어져 있는 TV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밥을 먹는 동안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왜이렇게 움츠러 있던지 몸과 마음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생선의 고소하면서도 비릿함이 입안을 감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최대한 느끼려고 하며 식사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 나는 시장을 조금 둘러보고 과일을 조금 숙소에 사가야겠다 하며 발길을 옮겼다. 건어물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골목마다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손님이 없는 거리를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나는 얼마 안가 주문진 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이 큰 배들이 떠있어 탁트인 바다를 볼 수 없었지만 배가 떠있는 물을 본 첫 순간이었다. 바람에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고 배들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두세 채씩 떠있었다. 나는 순간 비오는 바다이지만 이런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순간 감사함을 느꼈다. 항구에서 한참 서서 배가 떠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다시 시장으로 향하였다. 바람이 세게 불어 옷이 젖고 있었다. 약국, 한의원, 편의점, 줄지어 있는 가게와 그리고 마을 곳곳에 서서 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피로한 나의 시신경을 타고 들어왔다. 한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고 숙소로 가던 중 빵이 먹고 싶어 빵집에 들렀다. 서둘러 빵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데 빵집 점원의 순박하고 따뜻한 태도가 나의 마음속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과일봉지와 빵봉지를 들고 빗길을 뚫고 호텔에 도착하는데 순간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왜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왔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그동안 억눌려 온 무언가에 대해 강하게 항변하고 있었다. 마을의 꾸밈없는 태도와 소박함, 그리고 도심을 벗어난 자유로움이 나의 마음 한쪽의 눌려있던 스프링을 분출해버린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방안에서의 나의 휴식 시간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따뜻한 조명이 떠있는 가운데 나는 포근한 침대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TV를 켰다. 나는 어느새 격식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꽉 짜여진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찾아왔고 머리가 바쁜 것이 아닌 마음이 자유로움에 풀어지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과 안도감, 내가 품어지고 있구나 하는 따뜻함이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그렇게 그날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검색을 통해 대관령 양떼목장을 가기고 마음먹고 급하게 호텔을 나섰다. 가는 길을 아는 것도 아니었고 개관시간, 가는 버스 번호와 경로만 스마트 폰 속에 넣고 말이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버스 정류장 주변을 조금 헤매다 찾고 잠시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에 올랐다. 다시 어제 숙소로 오면서 펼쳐졌던 마을의 광경들이 정겹게 펼쳐졌다. 30분 정도 갔을까 도착지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걸었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강릉대도호부관아 근처에서 대관령 정상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대도호부관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몇 정거장 안되는 것 같으니까 택시를 타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그것은 순진한 착오였다. 강릉대도호부관아에서 대관령 양떼목장까지는 택시로 30분정도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나는 순간 나올 택시비에 헉하며 놀랐지만 이미 몸을 실은 택시였고 초행에 이 방법이 제일일 것이다 자위하며 대관령 정상으로 향했다. 택시의 운전 기사님은 매우 진솔했고 친절했는데 그 분은 내가 강릉에서 처음 말을 주고받은 사람이었다. 그 분은 대관령까지 가는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셨고 이것저것 여행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에 대해 알려주셨다. 비오는 날 서울에서 온 혼자 여행하는 여자 손님이 흔치 않았는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으로 얼은 마음을 녹여주신 고마운 분이다.


이윽고 도착한 대관령 양떼목장 입구는 비만 내리고 사람이 없는 숲속 초입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양떼목장 관람 후 전화를 주면 다시 오겠다고 배려섞인 말을 남기고 가셨다. 나는 숲속으로 한걸음 한걸음을 떼었다. 얼마를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고 그곳에서 표를 끊고는 목장으로 입장을 하였다.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림같은 건물을 중심으로 몇 마리의 양들이 풀밭에 방목해있는 울타리가 있는 목장이었다. 양을 실제로는 처음 본 나는 ‘와’ 소리가 나왔다. 양들은 낯선 이의 방문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풀을 뜯고 있었다. 나는 그 양들이 신기하고 신통해서 사진을 찍어대며 지켜보았다. 계속 이정표를 따라서 걸어가니 처음 본 것보다 훨씬 큰 드넓은 풀밭 목장에 수많은 양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목장에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양들은 그 음악 속에서 평화로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 일상이 그렇다는 듯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몇몇 양들이 풀을 뜯다가 낯선 이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를 쳐다봐주었다. 이 양들은 일 년 365일 이렇게 풀밭에 방목해있다고 하는데, 다만 일정 구역의 풀을 다 뜯으면 다른 구역으로 옮겨 방목을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양들을 보는데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어수선한 날씨가운데서도 마음이 점점 편안해짐을 느꼈다. 한참을 양들이 자유로이 오가며 풀을 뜯는 광경을 보고 있었고 나의 마음도 점차 가라앉았다. 목장은 매우 드넓었고 양들이 현재 있지 않은 구역들도 남겨놓아 대관령 정상의 전체 양떼목장은 마치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알프스를 연상케 하였다. 이곳저곳에서는 풍차 날개가 돌아가고 있어 운치를 더해주었고,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넓디넓은 산 위 광야를 만끽하며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다.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양떼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나무와 벤치들이 있었다. 비가와도 좋았다. 나는 커다란 자연 앞에 있었고 그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있었다. 까닭없이 눈물이 흘렀다.


양떼 목장을 한바퀴 도니 목장 전체의 한 가운데 목초를 주어 사육하는 양 우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관람객들은 양들에게 직접 목초를 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나는 먼저 우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들을 보며 인사를 하였고, 양들은 편안하게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한 쪽에서 목초 한 바구니를 받아 양들에게 손으로 직접 목초를 주었다. 배가 아직 고픈 양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서로 목초를 받아먹겠다고 경쟁을 하였다. 나는 그 양들이 배고플쌔라 한웅큼씩 목초를 집어 양들에게 주었다. 양들은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고 목초가 다 떨어질 때까지 양들은 내 손을 핥고 또 핥았다. 뒤늦게 온 한 양은 내게 아직 남아있는 목초 냄새를 맡고 나에게 고개를 들이밀고 둥글고 귀여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목초를 더 받아다 양들에게 다시 주기 시작했고 양들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따뜻함과 위안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목초를 주며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였다. 부드러운 양털이 내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며 왔다갔다 했다. 다 먹고 배부른 녀석들은 우리의 뒤쪽에 엎드려 소화를 시키며 한가한 오후를 즐겼다. 나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올라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목해있는 양떼가 있는 울타리를 다시 방문했다. 사람이 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이 너무 귀여웠다. 흐르는 음악 속에 양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간간이 들려왔고 양들은 여전히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한곳에서 풀을 다 뜯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풀을 계속해서 뜯었다. 풀을 뜯다가 갑자기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눕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중 한 어린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신기한가? 뭔가 특이한가? 그 양은 서서 그렇게 나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어린 양을 쳐다보았는데 나를 바라봐준다는 것이 어쩐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그렇게 양 울타리 옆에서 한참을 서있었는데 이 양떼 목장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들었다. 산 정상에 자리잡은 드넓은 양떼 풀밭. 그리고 양떼들. 도심 한가운데서 뜯기고 경직되고 작아진 마음이 넓게 뻥 뚫리고 내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삶의 목적도 다시 떠올리게 된 시간들이었다. 그래, 언제나 내가 중요해. 나의 감정과 느낌 한올한올이 살아 숨쉬지 않는 한 삶은 의미가 없어. 그 어떠한 대의도, 숭고한 목적도 나 자신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내가 살도록 하자. 내가 살아 숨쉬도록 하자. 아쉬운 듯 그 양들과 작별을 하고 나는 대관령 양떼목장을 떠나왔다. 양떼목장 입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며 세찬 바람과 비에 젖은 몸을 잠시 녹였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아직 끝나지 않은 오후가 아까워 비가 아직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안 되는 곳에 연곡해수욕장이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해수욕장에 다달았다. 그때 나는 올해 처음으로 거칠고 넓은 바다를 마주하였다. 세찬 바다 비바람이 내 몸을 아프게 내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이 바다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와!’ ‘와!’ 하는 감탄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본래 물을 좋아했다. 이렇게 많은 물이 한꺼번에 파도로 몰려오는 바다는 나에게 절경중의 절경이었다. 빈 숙소와 빈 텐트가 주변에 을씬년스럽게 늘어서있었고 아무도 없는 5월의 비내리는 해변, 나는 홀로 그 바닷가를 거닐며 거칠고 힘차게 쳐오는 파도를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쏟아지는 바다 비바람과 함께 내 안에서는 어떤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는 듯 했다. 나는 그 성난 바다를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다. 더불어 내 내면의 더럽고 작은 찌끼들이 남김없이 씻겨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고 옹졸했던 내 마음이 이 대 자연의 거대한 움직임 앞에 한없이 커지고 풀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꽉꽉 움켜쥐고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나와 화해를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외면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 오래 세상과 싸워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잊고 있었던 부분, 동시에 나를 스스로 못살게 굴고 있었던 나의 내면을 찬찬히 마주하며 나는 나와 화해를 하였다. 나는 훨씬 차분해지고 평안을 되찾은 마음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서울에 도착할 즈음에는 생각이 한결 정리가 되어 변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리고 복잡한 도로 한 가운데 내 몸을 실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여유가 있고 차분하고 따뜻했다. 다시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나를 못살게 굴지 않으리라, 그리고 작은 것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상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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