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바로 밑의 동생 지영이는 2년 터울을 갖고 태어났다. 나는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큰 엄마 닮은 아이로, 지영이는 신체가 다소 남자아이 같은 튼튼한 몸집에 흰 살결을 타고난 아이로 태어나 자랐다. 나는 뭐든 호기심이 강하고 욕심도 많은 편이었지만 지영이는 그런 나를 챙겨주고 배려하는 그러나 자기 세계가 강한 아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호흡처럼 당연하게 같이 있었고 함께 자랐다. 젖니가 빠져 영구치가 날 때도 함께였고, 유치원에 들어가고 소풍을 갈 때도 함께였으며, 잠을 잘 때도 함께였고,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을 먹을 때도 함께, 그리고 말을 안 들어 혼이 나고 벌을 받을 때도 함께였다. 또한 자라면서 우리는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각자 주장을 펴며 좋은 것 서로 갖겠다고, 서로 잘났다고, 나는 이것하고 싶다고, 저것 하고 싶다고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자라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서로 보듬어 안고 의지하기도 한없이 했다. 그러한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막내 미림이가 선물같이 태어났다.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둥근 아이인 미림이는 순하고 자기보다 어린 아기들과 동물을 사랑하는 천성이 따뜻한 아이였다. 동네를 지나가다 자기가 잘 아는 아기가 있는 집이 있으면 한번씩 들러 한참씩이나 아기를 보고 가는 그런 아이였다. 지영이와 나는 터울이 큰 미림이를 안아주기도 업어주기도 했고, 미림이는 우리를 잘 따랐다. 우리는 그렇게 자매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교 4학년, 지영이가 대학교 1학년, 그리고 미림이가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무렵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한창을 사랑받으며 자라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엄마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은 너무 큰 것이었고 세상을 잃은 듯한 슬픔과 충격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밝은 창을 잃은 듯 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우리는 그 후 그 상처를 각자의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나는 나를 채찍질하듯 유학을 떠났고 지영이와 미림이는 한국에서 남은 학업을 계속했다. 우리 셋을 이어주는 또한 윤활유와 같으셨던 엄마의 부재는 우리가 함께 있어도 마음이 각자의 아픔과 슬픔으로 하나가 되기 어려워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우리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
지영이는 그러는 동안 좋은 사람을 만나 상처를 어루만지며 결혼을 했고, 나와 미림이는 아직 혼자이다. 우리가 떨어져 각자의 삶을 유지하며 세상의 험한 풍파에서 각자의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는 성숙했고, 세상에 대하여 지혜로워졌다. 그렇게 가까웠고 친했던 지영이와 나는 많은 시간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다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여러 세월을 보내야 했고, 미림이는 엄마 없이 스스로 세상을 견뎌내고 싸우며 지내왔다. 40줄에 들어선 나는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며 엄마의 죽음 이후 그동안 소원해졌던 우리 세 자매의 관계에 대하여 바라봐보기 시작했다. 다른 어느 집보다도 사랑스러웠던 우리 세 자매. 나는 세 자매가 이젠 이전과 같은 친근함과 애틋함을 회복할 때라고 생각이 되었다. 우리들이 더욱 서로 단단한 울타리가 되고 그런 울타리를 만들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한 발자국과 같은 작고 수줍은 글을 동생들에게 몇 자 적어본다.
지영아, 미림아,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지. 더 가까웠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채로 말이야. 엄마 없이 각자 세상의 험한 파도들을 겪고 견뎌내느라고 피로하기도 하지. 언니도 처음 살아보는 세상이어서 많이 힘들고 어려웠단다. 부족한 언니지만 힘들 땐 언니한테 조금씩 기대 주렴. 언니 어깨가 크진 않지만 그동안 넓어진 가슴으로 너희들을 보듬어 안을게. 셋 중 마음이 가장 여리고 작지만 그동안 안보는 사이에 매우 단단해지고 커졌단다. 너희들은 어떠니? 너희들에게 바위와 같은 존재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언니의 마음이란다. 마음에 때때로 빈 공간이 생기면 문자하고 또 전화하렴.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할게. 사랑한다. 큰 언니가.
사랑한다.
큰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