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속 서퍼(surfer)에서 다시 책벌레로

by Baumee

나는 어릴 때 ‘책벌레’였다. 그야말로 눈뜨고 시간만 나면 책을 붙들고 읽는 아이였던 것이다. 책은 나의 숨결과도 같았고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아기 때부터 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던 나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이야기에 따라 마음이 밝아지기도 심란해지기도 하고 때론 흥분하기도 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학교 갈 때도 책가방에 읽을 책 한 두권 정도는 무거운 것도 모르고 넣어갔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은 책에 마음껏 푹 빠질 수 있는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도 가장 큰 관심사는 책꽂이. 친구가 어떤 책을 갖고 있는지 구경하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나는 곧 흥미 있는 책들을 바닥에 죽 펼쳐놓고 친구는 저리 가라 나 혼자 책을 읽고 있기가 일쑤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책을 거의 안 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종이책을 거의 손에 잡지 않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주는 폭풍 정보들에 빠져들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PC 화면으로부터 얻는 정보와 글들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온갖 정보들이 인터넷과 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여가 시간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것은 컴퓨터의 검색 엔진과 유튜브 사이트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시청각을 통해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양질의 정보들을 많이 접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 찬 그 매체들은 이를 해독하기 위한 시신경과 청신경의 매우 많은 에너지 소모로 쉽게 피로하게 된다. 인터넷 화면의 사진들과 영상은 일정 시간 보고 나면 시신경, 청신경 그리고 구부정한 몸의 자세까지 여러 가지로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주는 편리하고 빠르고 유용함 때문에 종이 글보다는 PC 화면의 빠르게 쏟아지는 정보들에 눈과 귀가 더 간다.


반면 책은 달랐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점점 빠져들어 활자와 함께 마음과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를 활발히 펼치기 바빠서 피로하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생기를 얻었다. 마음은 여유로 가득 찼고 책을 읽고 나면 뿌듯함과 잘 쉰 듯한 느낌도 든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느리게 음미하며 마음의 속도에 맞춰 스며들게 했던 종이책이 점점 손가에서 밀려나 컴퓨터 화면의 글들과 사진과 영상 정보들이 이를 대체하게 되면서, 접하기 어려웠던 정보도 손쉽게 접근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폭 또한 책으로 찾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어졌으나, 마음은 왠지 초조해지고 머리는 훨씬 쉽게 피로해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요즘 다시 종이 위의 활자 정보를 찾게 되면서 책이 주는 안온함과 슬로우함의 여유의 향수에 그동안 책을 멀리했던 시간들에 대한 공백을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되돌아보게 되었다. 삶이 바빠져서 책을 손가에서 멀리하게 되었던, 인터넷 정보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책을 놓았던 건 간에 종이 책이 주는 여유와 편안함과 건강함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마우스로 또는 손가락 터치로 신속하고 빠르게 넘어가는 인터넷 페이지와는 그 느낌과 속도는 다르지만, 글을 마음의 속도에 맞게 읽어나가는 것은 필요한 것만 훑듯이 지나가는 인터넷 속의 정보를 취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무엇이 있다.


행간에서 잠시 멈춰 생각도 하고 문장 속 의미에 대해서 훨씬 더 오래 곱씹어 본다. 글이 진정 내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더 많이 하게 된다. 컴퓨터 화면의 환한 조명과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버 공간 속 페이지 속에서 피로했던 시신경, 청신경이 잠잠해지고 마치 휴식을 하는 느낌이다. 정보를 습득할 뿐 아니라 그것을 천천히 느끼고 생각한다. 활자 속 의미들을 나 자신과 연관시켜 본다. 이런 이야기, 이런 정보를 쓴 사람의 사고 회로도 느껴본다. 책을 쓴 저자와 그 인생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해본다. 그리고 나의 인생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 책을 쥐면 곧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구나. 내가 책을 놓으면서 놓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컴퓨터와 인터넷 속 정보를 취하는 것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매우 큰 차이가 있고 다른 것이었다.



요즘 늘어난 시간들을 메우기 위해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 종이 냄새를 맡으며 책을 손에 잡고 읽는다. 오랫동안 버려놓았던 마음의 밭이 다시 뭉글뭉글 개간되고 넓어지고 기름지는 느낌이다. 코로나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나 이 시간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책이 주는 편안함과 여유 그리고 깊음...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허락된 이 시간만큼이라도 책을 다시 가까이하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책벌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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