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시련기

by Baumee

2019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나는 이 전염병이 가져올 무수한 것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 채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시대를 맞이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부터 우리나라로 유입된 후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너도나도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호흡기를 가리고 외출을 했고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가지 못한 채 집안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가도 마찬가지여서 다채롭고 찬란한 캠퍼스 생활을 꿈꾸던 새내기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Zoom(줌)으로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을 접해갔다. 직장에서는 확진자가 한 사람이라도 나오면 그 주변 사람들은 물론 그 확진자가 있던 동이 통째로 폐쇄되거나 심지어는 확진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퇴사가 되는 일도 벌어졌다. 많은 이동과 주중 하지 못했던 다양한 만남과 모임으로 이리저리 바빴던 주말에는 많은 만남과 모임들이 취소되고 집에서 자가격리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 북적대던 주말 스케줄도 매우 한산해졌다.


나의 코로나 시련기의 시작은 이러한 코로나 19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들에서 기인되었다. 그때 막 이사를 해서 짐을 정리하고 일상을 시작하려고 하는 그때에 닥쳐온 코로나 19. 나는 많은 모임과 만남이 없어지거나 미뤄지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여야만 했기에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마치 전에 있었던 곳에서의 삶이 장거리로 인해 단절된 후, 새로운 곳에서의 삶도 무언가 연결끈이 없이 시작하고 있는 그것과 같았다. 도심 가운데 위치한 집은 이러한 상실감과 허전함을 오히려 더 크게 느끼게 하였다. 결국 홀로 고립되지 않으려 일이 끝나고 홀로 있을 때마다 밖을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변 공원들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그곳에 간혹 나와있던 아이들을 보고, 또는 수목원 같은 나무와 풀이 더 많은 산소 가득한 곳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나와 강원도의 짙은 자연 녹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정서적 고립감과 허전함은 달래 지지 않았다. 평소 사람들과 교류하고 유익한 만남들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코로나가 가져다준 이러한 고립감과 관계 박탈감은 무엇인가 어떤 방법, 끈으로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키워가게 했다. 그러던 중 SNS로 낯선 이에게서 온 문자는 평소의 상황에는 그냥 지나치고 무시했을 법한 것이지만 그때는 한 번 무시했지만 두 번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것도 외국인에게서. 평소 외국어를 잘했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몇 마디 주고받았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의 대화는 곧 외국에 있는 듯한 일상적인 것이 아닌 유니크한 경험을 내게 선사해 준다는 느낌을 갖게 했고 이것이 낯선이에게서 온 문자라는 것도 곧 잊은 채 그 문자의 주인공과의 대화를 길게 이어가게 되었다.


결국 이 문자의 끝은 보이스 피싱이라는 피해를 내게 안겨주었다. 정서적 고립감과 교류 박탈감이라는 것에 깊이 노출되어 있던 내게 평소라면 이런 문자 쯤 가볍게 무시해 버렸겠지만 때를 맞춰 스며온 이 SNS 교류라는 허상은 나를 철저히 유린하고도 경제적인 큰 손실까지도 있게 하였다. SNS를 시작한 지 약 20일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진 나에게 온 피해상황이었다. 피해가 있은 후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그런 문자에 빠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지만 그때는 많은 것이 달랐기에 스며들듯 그 문자들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고립된 정서적 상황이 이러한 것을 불러온 것이다.


이후 피해 상황과 SNS를 통한 문자 내용 등을 경찰에 신고를 했고 엄청난 액수의 피해액으로 단순 온라인 사기피해가 아닌 경제과로 넘겨져 수사가 진행되게 되었다. 이 경우는 해외로 큰 액수의 금액이 넘어갔기에 국제 공조 수사요청이 불가피했고 지금 공조 수사요청 수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평생 다른 이의 돈은 빌려서 써보거나 그리고 금융권에 큰 액수의 금액을 대출받아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이 보이스 피싱으로 인해 너무나도 큰 금전적 손해를 보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그 SNS 문자의 주인공에게 준 신뢰와 돕고자 하는 마음을 도둑질 맞았고 이것이 이용되었다는 것에 더 큰 무서움과 아픔이 느껴졌다.


코로나 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나도 어떤 상황에서 전혀 당하지 않을 법한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며 언제든 낯선 이를 경계하며, 아무리 정서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낯선 이의 메시지나 손짓에 마음을 움직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전기처럼 켜지게 하는 사건이자 경험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