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은 가배를 좋아해
엄마 라이프에서 긴급 생존 배낭을 챙긴다면 가장 먼저 커피를 챙기겠어요.
100년 넘은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에 비하면 코딱지만 한 저의 커피 역사를 살펴보자면 수유기를 제외한 모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특히 힘들 때나 피곤할 때나 커피는 늘 손에 있었죠.
<엄마 하루 기록>에 따르면 아침 새소리에 일어나 아이들이 깨기 전 혼자 즐기는 따뜻한 드립 커피는 고요함을 주고,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보내고 마시는 남타커(남이 타주는 커피)는 경쾌한 음악처럼 나를 끌어올리죠. 오후에 마치는 커피는 그날 밤 별도 세고, 양도 세게 할까 봐 부담스럽지만 아이들의 하교(하원)가 다가오면 남타커의 효력이 급 하락합니다. 심적 고민을 하다 결국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남타커, 믹스커피 등 종류를 따지지 않고 한 잔을 추가하게 되죠.
이처럼 커피를 마시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어요.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요.
뭐 이쯤 되면 커피가 엄마를 챙기고 돌보았다고 말해도 '찬성 한 표!'에 마음이 스륵 움직일 것 같아요.
연동과 노형동 지역을 말하는 '신제주' 도심 안에 있는 카페를 발견했어요.
처음 본 날은 1년 전이네요. 이 골목에 일터를 꾸리고 동네 구경을 나갔다가 보았어요.
입구를 찍지 못했는데, "이리 오너라!"라고 말하고 싶어 혀가 간질거리는, 나무로 된 빗장 대문이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통찻집 또는 동네 어르신들의 만남의 공간인 다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날도 아이들의 하교가 30분 남은 시간, 쏟아지는 하품에 응급 커피 수혈이 필요했어요. '아무거나'라도 마시자 싶어 나무문 한쪽에 붙여 놓은 'Coffee'를 믿고 문을 밀어봅니다. (사실 안쪽에 자동문을 설치해 놓았어요.)
세상에! 한약 냄새 폴폴 날 것 같았는데 빵 굽는 냄새로 가득한 이곳은 전혀 다른 공간이네요. 예스러운 자개장이 벽면을 채우고 어릴 적 우리 집, 친구 집 거실에 있던 호랑이 자수 액자와 어린아이 키만 한 괘종시계가 카운터 옆을 장식하고 있어요.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것을 다 구하셨을까?' 궁금해졌지만 엄마 라이프에서 작고, 소중해서 더 지키고 싶은 혼자만의 시간의 '마감=아이의 하교'이므로 쨉 싸게 주문부터 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휘낭시에 하나 주세요."
"이 호랑이 액자와 시계를 보니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사장님께서 연세가 좀 있으신가 봐요? 그렇게나 어려요? 우와, 감각이 대단하시네요. 카페가 처음은 아니실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주문을 하며 아가씨였다면 결코 물어보지 않았을 것들을 속 시원하게 물어보았어요. 아줌마가 되니 아니 엄마가 되니 담아두는 것 없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아갑니다.
손님이 오시면 매실차와 과일을 담아내던 팔각 나무 쟁반 위에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가 담겨있어요. 무언가 낯선 기분이 들어 우선 휘낭시에부터 맛보았어요. 대박! 쫄깃한 식감에 바삭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이제껏 먹어본 구움 과자 중 최고라고 확신해요! 정말 맛있어요.
커피의 맛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음, 잘 어울려요!
고종황제의 기분이 이랬을까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사이에 있는 이 오묘한 기분.
시간 여행을 온 듯 12살 내가 살던 집에서 어른들의 음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상상에 빠졌어요.
이런 멋진 맛집을 이제야 오다니! 아이들의 하교 전 시간을 여기에서 즐기기로 한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유난히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둘 방법이 없어 얼른 먹고, 마신 후 휘낭시에 5조각을 포장해서 일터로 돌아왔어요. 곧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고 오겠지요.
휘낭시에를 꼭 맛 보여 주고 싶어요.
카페에 머무는 동안 유독 낯설게 느껴지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제 그곳에서는 가배로 부르고 싶네요.
이제 포근한 옛 추억으로 위로받고 싶은 날에는 연동이 있는 <제3공간>에서 "가배 한 잔 하쿠다!(커피 한 잔 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