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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17. 2023

게장은 왜 도둑밥이 되었을까?

선생님, 왜 게장이 도둑밥이에요?


 

  "미서야, 게장이 도둑밥이었구나!"

  "네, 도둑만 먹을 수 있어요?"


   팔도 음식에 관한 책을 읽던 미서가 고개를 휙 돌려 물어봅니다. 고요한 독서 시간을 깨는 미서의 질문에 어린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어요. 다들 아주 궁금해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우리 독서교실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어린이는 미서 뿐입니다.


  미서는 알록달록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통 튀는 탱탱볼처럼 궁금한 게 생기면 거침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겪었던 일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도 무척 솔직합니다. 목소리는 유리구슬 같아서 미서가 하는 말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미서는 대화를 할 때 말과 표정에 진심을 담기 때문에 미서가 하는 말은 힘이 있고, 표정은 시선을 사로잡는 것 같아요. 때로는 우당탕탕 미서가 되지만 콧잔등에 안경을 반쯤 걸쳐놓고 동생 미라에게 훈수를 둘 때는 영락없는 첫째이고 언니의 모습입니다.     


  "선생님, 왜 게장이 도둑밥이에요?"

  "미서야, 선생님과 같이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다시 읽어 볼까요?"



"참게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어.
 잡아다가 간장 부어 참게장 만들어야겠군."  

참게장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게 눈 감추듯 뚝딱.
그래서 참게장은 밥도둑이라 하지요.

  

  "자, 뭐라고요? 밥. 도. 둑이래요."

  미서는 "아, 맞네!"라며 웃습니다. 다른 어린이들도 밥도둑이라는 말에 휴, 긴장을 풀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밥도둑은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반찬 종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출처: 네이버)입니다. 도둑밥은 '돈을 내지 않고 몰래 먹는 밥'(출처: 네이버)을 말합니다. 참게장은 밥도둑입니다. 그런데 미서가 ‘밥’과 ‘도둑’의 위치를 바꾸어 읽었더니 다른 낱말이 되었습니다. 양념게장을 좋아한다는 미서가 화들짝 놀라게 말이죠. 저는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확인하는 미서의 이런 태도가 참 좋습니다. 사심을 담아보자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미서가 아니었다면 밥도둑과 도둑밥을 정의해 볼 일이나 있었겠어요?


  미서의 '도둑밥' 이야기는 몇 주가 흘렀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리고 제 일상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식구나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메뉴를 주문했는데 밑반찬으로 게장이 나왔어요. 이걸 보고 "와, 간장게장 요거 밥도둑인데!"라고 말을 하거나 "와, 양념게장 요거 도둑밥인데!"라고 말을 하더라도 사실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은 없습니다. 아마 밥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며 배꼽 빠지게 웃었던 즐거운 추억 하나가 생겼다고 하겠죠. 그 어떤 애피타이저보다 더 입맛을 당기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아요.


  얼마 전 마음속에 들어온,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유행하는 사진이 있었어요. 대충 살자, ooo처럼. 최근 들어 한동안 잘 눌러놓았던 저의 숨은 성격이 불쑥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 뿐만 아니라 독서 교실의 어린이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긋나 어린이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하는 날이 있었어요. 미서의 도둑밥 이야기에서 쉼표를 찾았습니다. 밥도둑이 왜 도둑밥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틀려도 괜찮고 모르면 다시 배우면 되고, 틀렸지만 웃음을 주었으니 좋고, 이제는 잊어버리지 않게 다시 배웠으니 그것도 좋고. 그러니 대충 살자, 미서처럼.   


  "미서야, 그 뭐더라? 노란색 그거?"

  "노란 거 뭐요?"

  "전기 나오는 그 노란색 캐릭터, 따개비였나?"

  "아, 피카츄요. 피. 카. 츄."

  "아, 맞다. 고마워."

  "이제 잘 기억해요. 따개비라니! 웃겨 죽을 뻔했잖아요."

  피카츄가 따개비가 되어도 그럴 수 있다며 웃어 주는 미서의 여유, 저도 말과 생각과 행동에 작은 공간을 두고 여유를 가지며 살래요, 미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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