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모르겠어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이제 학교에 입학을 해서 한 학기를 보내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에게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저는 한글도 모르고 학교에 입학을 했던 걸요. 아직도 입학식과 그다음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과정을 무난하게 할 수 있지만 한글이 신기했던 그날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바로 1학년 1반 교실에서 만난 백옥선 선생님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초록 칠판 옆에 자음모음표를 붙여두고 하나씩 짚으면서 읽어주셨어요. 그러면 우리는 따라 읽으면서 모양을 눈으로 찍고, 소리를 귀에 담았죠.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했던 첫 배움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는 제 이름을 적을 수 있었고, 물고기를 '물고기'라고 쓰고 읽을 수도 있었지요. (아, 분명 꽃을 '꽃'이라고는 못 썼을 겁니다.)
저에 비하면 요즘 1학년 어린이들은 무척 똘똘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표현하면 스마트하죠. 특히 저희 독서교실에 오는 친구들은 쓰기에 강한 어린이들이 많아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어린이입니다. 아직은 학생보다는 사랑을 듬뿍 주고 싶은 귀여운 친구들입니다. 제가 육아에 힘든 순간마다 고민을 나누던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채워져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입으로 감각을 느끼는 시기에는 많이 빨아보아야 욕구가 충족이 되고,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만져보아야 하는 시기에는 뭐든 많이 만져보아야 안전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옆으로 성장하며 채우는 모습을 보여줄 때 최고의 칭찬을 건넵니다.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공부하려 하지 않는 아이에게 "너는 하려고만 들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면 아이는 결코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는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 독서 교실에 오는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며 결국 자신의 꿈과 미래를 그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 진심은 공간을 감싸는 공기 안에 존재한다는 것과 어린이들이 가진 자율성의 힘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가 그리는 이상과는 멀 때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는 창의적인 어린이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말이죠!
선생님, 모르겠어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이 목소리는 1학년 어린이들의 선생님 호출 신호입니다. 그들은 정말 도움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이 목소리는 2학년 어린들의 선생님 호출 신호이지요. 2학년 어린이들은 정말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아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이것이 정답인지 문제의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3학년 어린이들은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용기를 내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 봅니다. 3학년 어린이들에게는 칭찬을 한 꾸러미 건넨 다음 잘못 쓴 글씨를 고쳐주어도 충분합니다.
티처-얼!
4학년 어린이들은 영어를 1년이나 배워서 그런지 특유의 R 발음으로 선생님을 호출합니다. 간단명료한 이들의 호출 방식은 사춘기는 아니지만 사춘기가 곧 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마저 풍깁니다.
......
5학년 어린들은 선생님을 거의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여가 시간이 생긴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학년입니다. 어른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미타임(me-time)'을 터득한 것이죠. 이들은 할 일을 체크하고 밀도 있게 시간을 쓰고 하원을 합니다.
* 미타임(me-time): 스트레스 해소 및 에너지 재충전 등의 목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2013년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 추가한 신조어다. (출처: 네이버)
......
6학년 어린이들도 5학년 어린들처럼 수시로 선생님을 찾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5학년 친구들보다 훨씬 사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해야 할 과제를 해낸 뒤에는 성취의 기쁨과 소감을 묻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먼저 나눠줍니다. 게다가 말문이 트이면 이야깃거리가 줄줄이 기차처럼 칙칙폭폭 계속 달려옵니다. 5분이 지나면 교통정리가 필요하지요.
"이제 자리로 가서 책을 읽을까?"
그러면 이제야 의자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번 주에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선생님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모르겠어요입니다. 왜냐하면 신문 읽기 수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1학년 어린이들에게 신문기사를 읽고 요약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서너 문장으로 된 짧은 기사이지만 처음 한 번은 함께 읽고, 단어를 점검하며 내용을 파악해 봅니다. 읽을 때는 의미 단위로 끊어 읽고, 중요한 단어는 형광펜이나 볼펜으로 표시를 합니다. 그다음은 스스로 읽으며 내용을 다시 파악해 봅니다. 그리고 요약, 정리하는 활동을 합니다. 간혹 금방 함께 읽었고 스스로 읽는 것을 보며 뒤를 돌았는데, 해보지도 않고 '모르겠어요'라는 호출 신호를 보내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삐릿삐릿. 비과학적 사고로 접근을 해보았습니다.
월화 < 목금
맑은 날 < 흐린 날
맑은 날 <뜨거운 날
평상시 < 체험학습 다녀온 날
마치고 약속 없는 날 < 약속 있는 날
대략 이 정도의 근거 없는, 추측성 데이터가 보고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속마음은 (피곤하니까, 귀찮으니까, 아묻따니까)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것입니다. 보통은 어린이들의 요구에 응답해 다시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이번 주에는 꽤 괜찮은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답은 여기 안에 꼭꼭 숨어있지.
오늘은 윤수가 술래야. 숨은 답을 다 찾아내자!
해내고 싶은 동기를 끌어주면서 즐거운 마음까지 착장 시켜주니 효과가 괜찮네요. 술래가 된 윤수는 꼭꼭 숨어있던 마지막 답까지 모두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윤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신문 기사 내용을 아주 맛있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도 '숨바꼭질하자'는 멘트를 즐겨찾기 해야겠습니다.
이런 멋진 생각을 해낸 나, 칭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