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엄마 봤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 보면 놀랄 걸요?"
"엄청 예뻐서 놀랄 걸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말만 세상에 뿌리는 아이가 있을까요? 윤아가 엄마 자랑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다니는 것을 알면 엄마 마음은 얼마나 기쁠까요? 윤아의 어머니가 부러워지는 주말입니다. 작고 귀엽고 소중한데 씩씩하고 딴딴한 1학년 윤아는 한마디로 '요망진' 아이입니다. 제주어로 '요망 지다'는 '야무지다'는 뜻인데, 경남 지역의 방언으로는 '야물딱지다'라고도 하지요. 그래도 뭔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여하튼 윤아는 '요망진'이 아닌 다른 단어로는 담아낼 수는 없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윤아의 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아아아!!
독서교실이 윤아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어요.
"윤아야, 울지 말고 우리 이야기를 나눠볼까?"
"엄마, 엄마, 엄마, 엄마아..."
지금 윤아는 어떤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 윤아는 학교를 마치고 독서교실에 왔다가 영어학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스케줄에서 윤아가 동의할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영어학원을 갈 때 매번 데려다주시던 이모와 시간이 맞지 않아 오늘은 혼자 셔틀차량을 타야 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윤아는 울면서 엄마만 찾고 있어요. 시간에 맞춰 오신 영어학원 선생님도 함께 설득해 보았지만 윤아는 독서 교실의 의자 기둥 하나를 꽉(진짜 꽉, 윤아는 힘이 세요.) 붙잡고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보자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우렁찬 목소리로 "엄마아!!"하고 울었습니다. 윤아는 한 발짝도 움직일 의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여름에 아주 진땀을 뺐지요. 결국 셔틀차량을 타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윤아가 이겼습니다. 영어학원의 셔틀 차량은 윤아를 태우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고, 소식을 들은 윤아의 어머니께서도 급히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엄마가 오고 계신다는 말에 윤아가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 시작했지요.
"선생님, 우리 집에 이따마한 강아지 있어요. 이름이 뭐더라?"
"시베리안 허스키?" 지난봄에 윤아에게 들었던 것을 얼른 기억해 냈습니다.
"맞아요. 허스키! 두 발로 서면 저보다 커요."
엄지공주 같은 윤아가 허스키와 두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장면이 떠올라 웃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윤아의 눈웃음을 보고 따라 웃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엄마가 오셨습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윤아 대신 먼저 윤아의 어머니를 맞이했습니다.
"어머니, 윤아가 갑자기 셔틀차량을 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나 봐요."
엄청 예뻐서 놀랄 걸요,라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지만 혹시나 윤아가 혼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 윤아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말았지요.
"아... 아침에 이야기를 했는데..."
아침에 미리 말을 해두었는데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았던 윤아로 인해 아마 어머니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급히 나오셨을 겁니다. 게다가 윤아가 지체하는 바람에 영어 수업도 이미 반이나 지나갔고요. 저라도 누구든 붙잡고 '내 이야기 좀 들어보소'라고 하소연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곧장 윤아를 데리러 갔습니다.
"윤아야, 윤아 어머니 진짜 예쁘다. 선생님 놀랐어요."
윤아의 볼이 발그레지더니 엄마를 만나러 뛰어갑니다. 긴장되는 순간이지요. 이 분위기를 깰 사람이 저뿐이었습니다.
"윤아야, 우리 다음에는 용기를 내서 셔틀 차량을 타고 갈까?"
"......"
"윤아야, 우리 윤아는 씩씩하니까 '셔틀차량 다섯 번 타면 엄마가 한 번 데리러 오기' 어때요?"
"좋아요!"
와, 드디어 윤아가 셔틀차량을 절대로 타지 않겠다는 말 대신 다섯 번은 타보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이제야 윤아 어머니의 얼굴이 보입니다.
"윤아가 '우리 엄마' 보면 예뻐서 깜짝 놀랄 거라고 했는데, 어머니, 저 지금 눈부셔요!"
어머니는 윤아에게 부끄럽게 자꾸 그런 말을 하고 다니냐고 말씀하셨지만,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아무렴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하루가 지나고 생각해 보니 윤아의 모습을 이해하고 헤아려준 마음이 더 예쁜 분이셨습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제가 꿈꾸는 것은 마음이 바다같이 넓고, 하늘만큼 높은 품을 가진 엄마이지만 그저 먼저 태어났을 뿐 같이 성장하는 중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많더라고요. 그저 예쁘기만 한 아이는 남의 집 아이 밖에 없구나, 싶은 날도 있고요.
이번 주에는 윤아가 비밀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이제는 셔틀차량을 타고 영어학원에 가고 싶어요."
늘 자신을 믿고, 뒤에서 기다려주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믿음은 윤아에게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극복해내고 싶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 엄마 보면 예뻐서 놀랄 걸요,라는 윤아의 말은 사실 더 깊고 귀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어머니, 윤아는 우리 독서교실에서 엄마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입니다. 정말 부러워요!"
<부록>
"우리 엄마 화가예요!"
윤아의 이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요. 윤아의 어머니께서 화가라는 사실과 윤아도 엄마를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신감, 윤아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마음 그리고 윤아는 매일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은 짧은 말입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은 모른 체해줍니다. 대신 그림을 잘 그렸다는 윤아의 자신감은 엄지를 세워 칭찬을 보내지요.
"윤아야, 선생님은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달팽이를 처음 봐."
"처음 보죠? 달팽이가 이렇게 하고 있어요."
달팽이가 '승리의 V'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거 제가 접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별이 있단 말이지요! 윤아의 마음에도 이렇게 앙증맞은 무지개 별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제 손바닥의 반쯤 되는 작은 손으로 요망지게 접었을 윤아의 모습이 겹쳐 보여 더 귀여운 별입니다. 색깔별로 구분해 놓은 모습에서 윤아의 평소 모습도 보이고요. 이 작은 별 속에도 윤아를 담은 '윤아다운'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거 찍어서 우리 엄마한테 보내주세요!"
네네, 이렇게 기쁜 순간은 엄마가 함께 나눠야지요.
엄마 사람인 저도 윤아의 엄마 사랑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샘솟습니다. 제가 엄마라서 다행이네요. 아빠였으면 질투가 날 뻔했어요. 우주 최강 엄마 사랑, 윤아에게도 요즘 고민이 있어 보입니다.
"윤아야,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볼까?"
윤아가 책 제목을 하나씩, 하나씩 살피더니 '이거야!'하고 책을 한 권 골라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책을 고른 이유가 궁금해요, 하고 물어볼 테지만 오늘은 끄덕끄덕 제목만 보아도 이해가 갑니다.
요즘 윤아네 집에는 셋째가 못 말리는 말썽꾸리기가 되었나 봅니다.
"제 말도 안 듣고, 엄마 말도 안 들어요. 윤호는 잘하는데, 윤수는 못 말려요. 아주!"
웃으면서 못 말리는 막내 동생의 이름까지 밝혀버렸지만 '엄마, 엄마' 부르며 엄마를 찾는 윤아도 집에 가서 두 남동생을 챙기는 큰 누나였네요. 어렵겠지만 셋째 윤수가 얼른 말릴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독서 교실 어린이들의 가정에 이번 주말에도 평화가 머물기를 빕니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