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원하면 어떻게든 이루어집니다.
땅에서 솟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든.
악!
제주 하늘에서 사슴벌레가 떨어졌습니다. 우리 독서교실 출입문 앞에 뚝, 하고 떨어졌지요. 온몸에 흙이 묻은 행색을 보아하니 골목 화단 어딘가에서 태어난 넓적사슴벌레 같습니다. 하늘에서 날아왔는지 땅에서 솟아올라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독서교실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사슴벌레가 어디선가 나타난 것이죠.
지난봄에 우리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와 호랑나비 알을 채집해서 번데기까지 키우고 날개돋이를 한 어른벌레를 함께 방생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어린이들은 호랑나비 애벌레를 또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름밤의 반가운 손님인 사슴벌레도 데리고 와달라는 주문을 종종 하고는 했지요.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가 봅니다. 사슴벌레마저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얘들아, 오늘 새로운 친구 왔어요.
"네에? 얘가 새로 온 친구가 맞아요?"
"응, 문 앞에 서서 책 읽고 싶다고 해서 들어오라고 했더니 여섯 다리로 엉금엉금 걸어 들어왔어."
"얘가 기어서 왔다고요? 여기까지요?"
"네 날개로 날아서 왔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갑자기 등장한 사슴벌레는 인기를 독차지합니다. 2학년 도현이는 자신의 옆 자리에 넓적사슴벌레를 놓고 독해서의 지문을 읽어줍니다. 연필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사슴벌레가 더듬이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자 도현이는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듯한 사슴벌레가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뭘 읽는지 다 보려고 해요,라고 말하며 사슴벌레에게 애정을 표현합니다.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 독서 교실 선생님의 추천은 '공붓벌레'와 '책벌레'입니다만 도현이는 내키지 않는가 봅니다. 결국 사슴벌레의 이름을 짓는 것은 자발적 숙제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넓적사슴벌레의 등장은 고학년 어린이들에게도 즐거운 일입니다. 징그럽다는 어린이들보다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어린이들이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얘는 어른이잖아요. 그럼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아닌가요?"
아하, 이 생각은 못했네요. 맞아요. 넓적사슴벌레의 성충이니 다 자란 어른 벌레이지요.
"그럼 새로 오신 자연 관찰 담당 선생님으로 하자!"
"오예! 좋아요. 남자 선생님 생겼다."
네, 이렇게 책을 읽으러 온 줄 알았던 넓적사슴벌레는 독서 교실의 남자 선생님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상이 면접 프리 패스상인가요!?'
어린이들은 사슴벌레 선생님에게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저녁에는 세수와 목욕을 시키고 올해 여름 자두를 사서 저녁 식사로 제공했다는 소식을 독서 교실의 SNS에 올려놓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잘 익은 바나나를 드셨습니다. 바나나를 아주 좋아해서 아주 24시간을 껴안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근무태만이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넓적사슴벌레 선생님의 인기는 급상승 중입니다. 우리 독서 교실의 막내와 덜렁대장 언니가 머리를 맞대더니 한글부터 가르쳐야겠다고 합니다. 슥슥, 사슴벌레 선생님이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무언가를 잘라 붙입니다.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ㅍ,ㅎ,ㅏ,ㅑ,ㅓ,ㅕ,ㅗ,ㅛ,ㅜ,ㅡ,ㅣ
어머나, 사슴벌레가 무서웠는지 도망간 자음과 모음도 있네요. 뭐,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모든 관심을 사슴벌레 선생님은 좋아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하늘을 날 것 같네요.
'아, 원래 날 수 있었지!'
셋째 날에는 제주의 하우스 귤을 식사 메뉴로 넣어보았습니다. 빛깔 보세요, 정말 맛있어 보이죠? 제가 먹고 싶었는데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바나나에 다음으로 주었더니 반응이 너무 다릅니다. 먹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립니다. 반찬 투정이 시작된 것 같네요. 이렇게 살다가는 숲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텐데 배가 불렀나 봅니다. 다음 주에는 숲 속에 풀어줄 계획이었는데 이래서 살아남을지 정말 걱정입니다.
그나저나 사슴벌레가 있으니 엄마 몰래 집에 있는 장수풍뎅이를 데리고 오겠다는 어린이, 집에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있는데 성충이 되면 데리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사슴벌레를 키우며 기다려달라는 어린이, 넓적사슴벌레 암컷도 찾아달라는 어린이 등등, 어린이들의 이야기보따리가 날마다 가득 차네요.
네네, 여러분. 늘 그래왔듯 모든 결정은 어린이 여러분과 함께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날, 독서 교실의 예쁜 어린이들을 만나 목욕도 하고 달콤한 자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곤충이 된 넓적사슴벌레 선생님의 첫 식사 영상으로 뚝 떨어진 사슴벌레를 주워 어쩌다 키우고 있는 독서교실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