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뺄 결심
자비심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지만
오늘부터는 자비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요즘 날이 참 습하지요? 제 기분도 장마철입니다. 특히 출근 준비를 할 때나 주말에 외출 준비를 할 때면 아주 눈에 습기가 차오릅니다.
왜 이리 입을 옷이 없을까요?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입을 옷이 없는 게 아니라 맞는 옷이 없는 것입니다. 어쩌다 입고 나간 옷도 예전의 그 핏(fit)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 가게의 쇼윈도에 비친 모습을 보고는 얼른 고개를 돌립니다. 엉엉.
그렇게 많이 쪘어?
주변 사람들은 아직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살이 쪄서 생기는 불편함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옷장 속에서는
억지로 잠가 놓은 바지의 못쓸 힘자랑으로 얻은 훅 터짐
길이가 짧은 상의를 입었는데 눈치 없이 튀어나오는 아랫배를 위한 습관적 배 집어넣기
간택만 기다리다 계절 다 갔다는 하늘, 핑크, 연보랏빛 봄 옷들의 한탄
올해는 꼭 제주 바다를 보고 싶다던 빨간 랩 원피스의 소리 없는 좌절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옷장 속 옷들의 삐짐_"저 검정 바지만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매일 외출하는 옷의 고된 피로와 하소연_"내일은 쉬면 안 되나요?"
몸도 살이 찌니 힘들다고 합니다.
요가를 다시 하면 어떨까?
걷기! 걷기도 참 좋았잖아. 다시 걸어보자.
바빠도 화장실은 참지 않으면 좋겠어. 그것 때문에 몸이 붓는 기분이야.
물도 챙겨 마시고. 화장실 가야 되다고 안 마시지 그러지 말고.
거봐, 살은 둘째고 붓기라니까. 요즘 아침마다 다리에 쥐가 나서 소리 지르며 깨잖아.
자꾸 눕고 싶어 지지?
하지만 이 모든 걸 통틀어 가장 큰 불편함은 걸을 때마다 스치는 허벅지 안쪽 살입니다. 더운 날 원피스 하나 입고 나가면 참 좋은데, 이 살 때문에 불편해서 치마를 입을 수가 없네요.
쏟아지는 민원에 먹기 담당인 입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있다며 변명을 합니다.
난 먹고 싶지 않은데,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주인이 입이 심심하다며 자꾸 뭘 넣네!
음, 입과는 한 팀인 줄 알았는데 배신감을 느낍니다. 제 입인데 옷장에 붙었다 다른 장기에 붙었다 하며 결국 저를 대변하지 않는군요. 아, 안 되겠습니다. 쳇! 저도 저렇게 말하는 입에 삐졌어요! 그동안 맛있는 것을 얼마나 맛 보여줬는데! 그래서 주말에는 결심을 했답니다. 입을 심심하게 만들 결심, 덜 먹을 결심, 살을 뺄 결심을 말입니다. 입이 아주 심심해서 못 견디겠죠? 과자는 좋아하지 않지만 밥을 무척 좋아하기에 밥 양부터 줄어야 합니다. 다이어트의 기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운동을 할 결심도 했고요. 다시 매일 만보를 걷을 결심도 했어요. 이번 주부터는 신제주의 어딘가에서 앞만 보고 걷는 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물을 자주 마시고 탄수화물부터 줄이려고 합니다. 빵 안녕, 빵은 그나마 쉽게 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밥 양을 줄이는 것은 매우 노력을 해야겠지요.
결심은 신속하게, 행동도 신속하게
결심도 행동도 신속하게 해야 하는데 결심은 토요일 밤에, 행동은 월요일부터로 정했더니 시간의 간극이 생깁니다. 그 틈을 '장비발'로 메꾸어 보려고 쿠팡에 접속을 했습니다.
'가루 물'
이상한 검색어를 넣었지만 쿠팡은 제 마음을 알아차렸네요.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이라 물에 타 먹을 레몬맛 또는 석류맛 분말을 찾으려고 했거든요. 역시 검색 기능은 쇼핑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다가 너무 많은 가루의 종류를 보고는 금세 흥미를 잃고 어플을 껐습니다. 우선 맹물부터 마셔봐야겠습니다. 의지만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살 빼기 여정을 이루어내고 싶네요.
부디, 내일의 시간은 오늘보다 더 건강하게 시작되었길 기대해 주세요.
아니 사실은 탄수화물을 줄였다고 해서 제 마음이 초 예민, 짜증쟁이가 될까 걱정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빌어주세요.
표지 사진은 지금 제일 먹고 싶은 떡볶이+쫄면=쫄볶이입니다.
이번 주에도 행복한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