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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05. 2023

젓가락질 잘못해도 밥 잘 먹어요

고기도 마늘도

  자고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부심은 바로 젓가락질이지요.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도 쇠젓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다 보니 어린 시절의 젓가락 교육은 소근육 발달, 지능 개발을 너머 언어능력에 인간성, 도덕성까지 키운다는 예찬을 읽은 적도 있어요. 맞아요. 저도 우리 집 아이가 젓가락질을 아주 바르게 잘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젓가락질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한국인 중 한 명입니다. 아마 우리 집에서 젓가락질 잘하기 대회가 열린다면 꼴찌는 제가 맡아두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에 있는 제주 흑돼지구이집에 갔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검은색 접시에 맞춰 젓가락도 검은색으로 준비해 놓았더라고요. 보통 집에서 사용하는 쇠젓가락 대신 오늘은 둥근 멜라닌 젓가락과 손과 입을 맞추어 보아야 합니다. 손잡이 부분은 두껍고, 아래는 가늘어 젓가락질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편리한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위아래의 굵기가 다른 이 젓가락은 아주 고난도의 식사 도구입니다.


마늘 집기 도전 @무지개인간


  아니, 완두콩도 아닌데 이 참기름에 익힌 마늘은 왜 안 집힐까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던 호랑이도 참기름을 바른 발로 나무에 올라가려다 실패했으니 아마도 미끄러운 참기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 옆에 계신 분은 찹찹 잘 드시네요. 참기름 탓은 아닌가 봅니다.


자꾸 고기에 시선이 가네요 @무지개인간


  괜찮습니다. 별 일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기로 해요. 다른 도구를 찾아 쓸 줄 아는 지혜로운 인간이니까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슬기 사람입니다. 숟가락으로 뜨면 아주 쉽게 마늘을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먹던 숟가락이 아니라 새 숟가락으로 뜨는, 단체 생활도 무난히 잘 해낼 배려심도 갖춘 사람입니다. 하하하. 아무튼 드디어 마늘 한쪽을 맛보았습니다. 냠냠.


내 젓가락질이 어때서 @무지개인간


  문제의 젓가락 실력입니다. 가지런하고 단정해 보이지만 음식을 집을 때는 남들보다 하나 더 많은 손가락이 활짝 펴집니다. 교정 젓가락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실패의 첫 번째 이유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준 젓가락 사용법으로는 먹을 수 있는 게 몇 가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젓가락질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밥맛이 확 떨어져서 삶의 질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젓가락질로 잔소리를 할 나이도 지났고 해서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젓가락질이 불편해도 국수는 잘 먹습니다. 제주 흑돼지 구이를 먹고 식사로 주문한 살얼음 동동 냉면도 한 젓가락 얻어먹었습니다. 가느다란 면발이 입으로 후루룩 넘어가자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다시 마늘 집기에 도전했습니다. 숟가락으로 떠서 맛본, 참기름에 달달하게 익은 아까 그 마늘 말이죠.


마늘 너, 찍혔어 @무지개인간


  에잇! 실패군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다소곳하지만 화려한 젓가락질로 고기도 많이 먹고, 밥도 먹고, 냉면도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게 말이죠. 뭐, 마늘은 숟가락으로 먹으면 되지요. 안되면 젓가락으로 찔러 먹어도 되고요. 비록 하찮은 젓가락질이지만 제게는 유용합니다. 젓가락 덕분에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습니다.


  저처럼 젓가락질을 못 하는 다정한 독자님, 우리 스트레스받지 맙시다. 비록 우리의 젓가락질이 별 볼 일 없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세끼를 즐길 자격은 충분하니까요. 그러니 맛있는 세끼를 즐기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독자님의 브런치 타임(brunch: 아침 겸 점심 식사)이 즐겁고 맛있는 시간이 되길 빕니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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