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육지에서 보냈습니다. 육지에 살 때는 그곳을 '육지'라고 부르지 않고 지역 명을 불렀는데, 제주에 살다 보니 전국의 어디를 가든 '육지'라고 칭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아무튼 일도 하고 가족도 볼 겸, 뭍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말에 찾은 큰 기쁨은 당연히 가족을 만나는 것이지만 작은 기쁨을 꼽으라면 계수나무를 만난 것입니다.
쎄쎄쎄!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어릴 적 동생과 손을 마주 잡고 동작을 맞추던 그 노래에 나오는 계수나무이지요. 물론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이 나무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알고 보면 사랑스러운 나무인 것은 분명합니다.
계수나무의 잎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통통한 하트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사임당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0~30m로 자라는 큰 키에 비해 잎은 동글동글 아주 귀엽지요. 게다가 붉은색 잎자루가 매력을 더합니다.
계수나무 그늘 밑을 살펴보니 일찍 떨어진 잎이 하나둘 보였습니다. 계수나무는 가을이 되면 이렇게 연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낙엽은 가을이 깊어지면 더 바싹 말라 갈색 크라프트지 같은 색을 띠게 됩니다.
제가 계수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잎에서 솜사탕 향이 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잘 마른 계수나무 잎에서는 '엄마 손 잡고 나들이 갈 때 먹어 본' 커다란 솜사탕 향이 납니다. 이 귀여운 잎 하나를 이야기하며 동요를 벌써 두 곡이라 불렀네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주는 귀여운 잎입니다.
계수나무는 예쁜 잎을 따기보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틴케이스에 담아 두면 오랫동안 그 향을 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부엌 근처에 틴케이스를 두었다가 설거지를 끝내고 향을 맡으면 세상 모든 일이 달콤해집니다. 사실 뻥입니다. 아주 잠깐 달콤해집니다. 그래도 우리는 잠깐의 달콤한 휴식으로 행복 회로를 돌릴 수 있으니까요.
처음 계수나무를 발견했을 때는 물론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크고 풍성하지 않았는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많이 자랐습니다. 역시 사람이나 나무나 남의 집 애들은 무럭무럭 하루에 다르게 자라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나무 그늘이 생길 정도로 가지를 많이 낸 나무도 있고요. 그늘 아래로 들어가 보니 계수나무 잎이 내는 옅은 솜사탕 향이 코에 닿습니다.
계수나무의 싱그러운 초록빛 여름 향기를 느껴보세요.
아직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 이번에는 계수나무의 잎을 좀 따서 왔습니다. 향이 진하지는 않지만 아직 제주에서는 계수나무를 보지 못해기 때문에 옅은 향이라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말려서 연 노란빛이 돌면 틴케이스에 담아 편지를 쓸 때 한 장씩 꺼내 쓰고, 자연의 위로가 필요한 날에도 달콤한 향을 맡아보려고 합니다.
제주는 오늘부터 열흘 정도 다시 장맛비가 이어집니다.
비 오는 날은 머리를 감기 싫습니다. (brunch.co.kr)
오늘도 날이 흐려 머리를 감기가 무척 귀찮지만 그래도 지난 주말 비행기 시간에 맞춰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혀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한 주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싱그러운 7월,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