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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28. 2023

여름엔 냉장고 속 시원한 하귤

대충 들은 제주 하귤 먹는 법

하귤 먹언?


  "하귤은 아직 안 먹어봤는데..."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맛있는데"


  감자를 주겠다는 앞 집 언니를 따라나섰는데 하귤이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두어 개를 더 주려고 하는 언니의 손을 한사코 말려 하나만 얻어왔지요. 하귤이 처음이라서, 저는 낯가리는 여자니까요.

  

 껍질 까서 먹어.


  감자를 담은 봉지를 들고, 하귤 하나를 손에 쥐고 뒤를 돌았는데 언니가 뒤통수에 대고 외쳤습니다. 꼭 껍질을 까먹으라고 말이죠.

  'ok, 껍질을 까서 먹는다.’ 일단 냉장고에 하귤을 넣었습니다. 언니가 시원하게 먹어야 된다고 했으니까요.


  하귤을 아시나요? 하귤은 여름 하(夏), 귤나무 귤(橘)로 봄부터 여름까지 생산되는 귤을 말합니다. 제주 여행을 하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어른 주먹만 한 커다란 귤이지요. 겨울 특히 눈이 내린 날에는 이 하귤이 제주의 풍경을 더 제주답게 완성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름에도 하귤이 있으면 더 제주스럽지요. 이처럼 저는 하귤이 관상용인 줄만 알고 감상만 했습니다. 뻥튀기처럼 커진 귤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풍경이 어느 계절에 보아도 예뻤거든요.


  하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부끄러워서 껍질을 마구 모아 숨은 듯 꼭지가 쏙 들어가 있네요. 오늘 받은 하귤은 밝은 레몬색입니다. 보기만 해도 상큼한 기운이 톡톡 터질 것 같습니다.


하귤 @무지개인간
제주 하귤 @무지개인간


  친절하게 위, 아래, 옆모습까지 찍었습니다.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쓸모가 달라진 하귤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요.


  제가 하귤을 처음 본 것은 2011년 생애 첫 제주 여행에서였습니다.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에서 이 신기한 열매를 보았지요. 땡볕의 정원을 다니다가 '어떻게 저렇게 큰 귤이 있지?'라는 생각을 했고, 가까이 다가가 이름표를 보고 '하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는 몹시 뜨거운 7월 초여름이었기에 애쓰지 않아도 하귤은 오래 각인이 되었지요. 이후 구좌에 있는 우리 집 사춘기 어린이의 친구의 할머니의 동네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 다시 제주 여행을 온 적이 있었지요. 그때 할머니께서 못 먹는 거라고 하셔서 '아, 쓸모없는 녀석이구나.' 생각을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두 번째 여행을 왔을 때는 감귤철이라 새콤달콤 침이 고이는 맛있는 귤을 두고 굳이 하귤을 찾아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었던 것 같네요.


  아무튼 이 하귤을 이제 먹어 보겠습니다. 찍어둔 영상을 오늘 처음으로 다시 보았는데 ASMR 같네요.


제주 여름 그리고 하귤 @무지개인간


  능숙하고 침착하게 자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껍질 까서 먹어...


  당연히 겉껍질이겠지 하고 깠는데, 당연한 것이라면 언니가 두어 번이나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열렸습니다. 그렇지요. 겉껍질을 까서 먹어야 하는 당연한 이야기라면 말하지 않을 것이지요. 언니도 제가 껍질채로 와그작와그작 먹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으,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네요. 우선 찍고 있던 동영상을 끄고 생각과 행동 사이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럴 때는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요. 언니는 새하얀 속껍질을 까서 먹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하귤을 꺼내 두꺼운 겉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껍질도 벗기니 탱글탱글 알맹이들이 보였습니다. 먹어 볼까요?


앗! 저는 중독될 것 같아요.


  코를 찡그릴 신맛을 예상했지만 전혀요. 오히려 신맛, 단맛보다는 쓴 맛이 조금 있었지만 과즙도 많고 상큼했어요. 매력이 있어요. 자꾸 손이 가네요. 세상에! 하귤 사러 오일장 갈 판이네, 자꾸 줄어드는 하귤 과육을 보며 이런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이번에는 나눠 먹을 것도 없이 혼자 다 먹어 버렸어요. 언니가 더 준다고 할 때 그냥 받을 걸, 감자 받으러 가던 그날로 시간 되돌리기도 했고요. 씨라도 심어볼까, 마당도 없으면서 의욕만 부려 보기도 했지요. 단, 냉장고에 두었다가 시원하게 드세요. 찬 기운이 빠지니 쓴 맛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제주 여행 중 하귤을 맛볼 기회가 있다면 시원하게 해서 드셔보시면 좋겠습니다.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언젠가 정원 있는 집이 생긴다면 하귤나무를 꼭 심어야겠습니다. 둘째가 좋아하는 제주의 여름 과일, 비파나무도 심고요. 생각 속 정원을 만들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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