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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28. 2022

눈치 속성 과외

리미티드 에디션

  전편에 실은 <애살을 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눈치를 심는 일입니다. 우리 집 큰 아이(초육)는 네 살 터울 동생에 비하면 눈치력이 약해요. 눈치 있게 나중에 물어봤으면 하는 일에 궁금함을 못 참고 그 자리에서 물어보다가 저의 도깨비눈 레이저빔을 맞기도 하고, 운전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요구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잔소리 폭격을 맞기도 해요.




  "초육아, 아침 먹고 바로 눕지 마. 배가......"


  코로나 확찐자가 된 아들이 아침을 먹자마자 거실 바닥에 눕는 게 못마땅하지만, 사춘기를 앞둔 나이임을 잊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했어요. 아이가 눈썹을 동그랗게 만들며  웃으면서 물어봅니다.

  

  "배가 뭐?"


  그러고 보니 평소에 어린이들에게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문장을 꼭 완성하라고 주문했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문장을 완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니 당황하게 되네요.


  "완성해 줄까?"

  이번에는 저의 눈과 눈썹을 동그랗게 만들어 아이의 질문을 받아쳤어요. 요점만 간략히 쓰는 스매싱 기술이 들어갔네요.


  "으흐흐, 괜찮아."

  초육이는 웃으며 일어나더니 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건 무슨 기분일까요? 물론 이기고 지는 기싸움도 아녔기에 승자도 패자도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일도 아니고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면 눈치가 자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눈치가 아니라 제 눈치가 조금씩 자라는 기분이 드네요.


  때로는 어린이에게도 '......'(줄임표)로 생략하고 싶은 말과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요. 이제는 줄임표 뒤에 꼭꼭 숨겨진 말과 마음을 알아채고 "완성된 문장으로 써볼까?" 대신 또똣한(제주어,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주고, 머뭇거림에는 용기를 주는 눈치 있는 선생님으로 레벨 업합니다.  눈치껏.



전편 <애살을 심는 일>을 못 보셨다면..

애살을 심는 일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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