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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21. 2023

멋진 언니,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비가 마구 쏟아지다 금세 쨍하고 해가 비추는 오늘 날씨는 아무래도 요즘 제 마음 같습니다. 하와이안 피자를 포장해서 외도동에 있는 알작지 해변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며 달콤한 파인애플 과육이 씹히는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며 바다 구경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주차를 하는 순간 빗방울이 하나둘씩 유리창에 떨어집니다. 왜 하필 지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좋아 그런 생각이 들 틈도 없었어요. 옆으로 내리는 빗물에 유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거든요.


알작지 해변 @무지개인간



  "엄마는 요즘 글 안 써?"

   집에서 가장 늦게 등불을 끄는 사람이 엄마인데, 지난주에는 열 살인 자신과 매일 함께 잔 것이 떠올랐는지 아이가 물어봅니다.

  "엄마 계속 쓸 거야. 어떤 멋진 이모가 응원해 줘서..."


    




  <아버지의 해방일기>를 쓴 정지아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어요.

  "소설의 마지막 완성은 독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모두 다르게, 제각각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해요."

  그래서 <자기만의 방>을 읽고 제가 만난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를 다정한 독자님께 글로 소개해 드립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929년 초판본 표지

  


  보자마자 소장하고 싶어지는 <자기만의 방> 1929년 초판본 표지입니다. 작가의 친언니인 화가 바네사 벨(Vanessa Bell, 1879~1961)이 그린 표지입니다.


(좌)Vanessa Bell, Virginia Woolf in a Deckchair   (우)Vanessa Bell, Virginia Woolf



바네사 벨은 동생인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그녀의 책 표지도 많이 그렸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자기만의 방>뿐만 아니라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호가스 출판사(Hogarth Press)에서 책을 출간할 때, 언니 벨은 손으로 표지 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제목과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벨이 마지막 붓질 후 내려놓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니 책이 더 따뜻해집니다.


출처: 모닝갤러리

  


 (59p.)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의 글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책 속 '나'가 책을 읽으며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하듯, 저도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 그녀를 떠올렸습니다. 1장에서 3장까지 만난 울프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작가와 문학에 대한 견해를 이쪽, 저쪽 바쁘게 산책을 하며, 때로는 식사를 하며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지식이 아주 깊고 넓다는 것에 감탄을 하면서 말이죠. '어떻게 이 많은 것을 다 기억하지? 나라면 어지러웠을 거야.'라는 물음을 가지면서 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이나 시를 쓰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문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이 필요하다'(153p.)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작가가 살던 시절의 500파운드는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5,000만 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굵은 빛을 내며 반짝입니다. 캘리 최 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주언규 PD님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저에게 연봉 5천만 원에 과장하라고 하면 저는 회사 안 나왔어요."

  5천만 원! 5천만 원이면 회사를 다녔을 거라는 (구) 신사임당 주 PD 님의 한 마디에 시계가 멈췄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주 PD 님의 모습도 없었겠군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아, 5천만 원!

  5억, 50억, 500억도 아니고 5천만 원만 매년 벌 수 있다면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연봉 5천만 원이 되기까지, 그 몇 년을 가장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퇴근 후 편의점에서 작은 컵라면을 하나 먹고 도서관 문이 닫을 때까지 불타오르게 공부했거든요. 그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목표를 이루었고요. 하지만 현재로 돌아와 '벌고 싶은 목표'를 적으라고 하면 저는 5천만 원을 적어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더 큰 수익을 바랄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의 반복을 통해 또 하나 알아차린 것은 사람은 머리로는 그 이상의 금액을 벌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1년에 5천만 원이 내 통장에 들어온다면 '충분한' 만족을 느끼며 안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시절에 태어난 나는 이제야 알았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100년 전에 알았구나!'

  정말 멋진 언니입니다! 그것도 100년 전에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이루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금액을 '목표가'로 제시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혜안에 정말 놀랐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그럼, '자기만의 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침 독서 모임에서 '자기만의 방'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그리고 남성들은) 자기만의 방이나 서재 대신 부엌 식탁이나 거실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자신의 일을 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의 의미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꼈는데, 공간으로써 자기만의 방 또는 책상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글을 쓰기 위한 더 넓게는 삶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신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통해서 제가 평소에도 시간을 무척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미르북컴퍼니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준비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이제 버지니아 울프가 '나'를 통해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 (155p.)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158p.)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영향력을 가져야 할지를 제시해 주려고 수천 개의 펜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164p.)

  그러니 우선 무엇이든 써보세요. 행동하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인의 처지라 해도 무엇이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을 담는 에세이에 픽션을 가미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천천히 생각하며 더 답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책을 통해 용기를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독자님께서도 각자의 <자기만의 방>을 스스로 찾아내시길 바라며, 독자님의 모든 삶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더 자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가을의 어느 소중한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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